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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신비스런 설봉의 나라…뉴질랜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두달 동안의 호주여행을 마치고는 다음 나라인 뉴질랜드로 가기 위하여 시드니공항에서 여객기에 올랐다. 이 공항은 지난 5월초 엘리자베스여왕이 테이프를 끊은 멋진 새 국제공항이다.
7월 초순이라 남반구는 한겨울로서 뉴질랜드는 남극에 가까우니 기후로 보아도 불리한 때로서 호주에서와 같이 교통편만 이용하고 자취를 하는 이른바 사파리 여행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티키·투어(Tiki Tour=행운의 관광이란 뜻)이라고 하여 여객기왕복이며 관광·숙박 등의 일체를 정부당국이 경영하는 값싼 국영 여객기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호주에 돌아오지 않고 뉴질랜드여행이 끝나면 다음 여행지인 피지섬에 가야 하기 때문에 국내여비만 지불하기로 했다.
호주와 2천㎞나 떨어진 넓은 대양 위를 달려 뉴질랜드 땅이 보이는가 하더니 남알프스의 눈 덮인 산봉우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나라는 부부섬이랄까, 남도와 북도의 두 큰 섬으로 이루어 졌는데, 착륙할 곳은 남도의 남쪽에 있는 크라이스트처치공항이다. 그런데 저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들에 쌓인 눈의 높이가 설선으로서 일정한 것이 흥미있었다.
이 남도는 화산도로서 산세가 매우 험하여 아직 정복하지 못한 산들이 있다고 한다. 남알프스의 몽블랑격인 쿡산은 3천7백64m의 최고봉으로 장관이었다. 이 산은 이 섬의 원주민인 마오리의 말로는 아오랑기라고 하는데 이것은 『구름을 꿰뚫는다』는 뜻의 이름이라고 한다. 여러 산들에는 빙하가 있으며 가장 큰 쿡산의 동쪽 경사면으로 흐르는 타스만 빙하는 넓이가 약2㎞, 길이 약30㎞나 된다.
이것은 온대로서는 히말라야의 빙하 다음 가는 크기이다.
그리고 쿡산의 양쪽 경사면으로 흐르는 프랜츠조세프빙하는 온길이가 16㎞이며 경사면이 가파르기 때문에 해안선에 가까운 데까지 빙하가 닿아 있어서 매우 독특한 자연미를 이루고 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산들을 내려다보노라니 저 유명한 R·슈트라우스의 알프스여행곡이나 호바네스의 신비스러운 산이란 음악에 그려진 장엄과 신비가 느껴진다. 그리고 이 설산들은 한결같이 성자들의 모습과도 같이 영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모르긴 해도 이 산은 아직 전쟁이란 이름으로 피를 흘리지 않은 성스러운 땅일 것이다. 알프스는 나폴레옹군대의 발에 짓 밟혔지만….
헬리콥터나 낙하산으로 산꼭대기에 내리면 얼마나 좋으련만 이것은 부질없은 꿈이며 봉우리를 잘 보라고 여객기가 봉우리에 아주 가까이 날지 않아 똑똑히 못 보는 것이 아쉬웠다. 이 남알프스의 빙하는 그 옛날 세계를 휩쓸었던 빙하시대 때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아니, 이곳은 지금 빙하시대와 같지 않을까. 이곳 빙하는 하루에 약10㎝씩 아메바의 걸음처럼 느리게 하류로 내려가므로 육안으로는 그 움직임을 볼 수 없다. 그러나 까마득한 옛날부터 줄곧 내려오고 있어서 Y자형의 골짜기가 자꾸만 깎이어 U자형으로 바뀌어 있는데 밝은 햇빛을 받은 빙하는 아름답다.
이같이 새하얀 눈으로 덮인 영봉들이 자연교회의 뾰족한 지붕이랄까, 드높이 솟아 있는 가하면 언덕이며 평지에는 이 또 무슨 조화일까. 한겨울인데도 새파란 목초로 뒤덮여 있고 시냇물이 흐른다. 적갈색의 흙과 사막과 건천만 주로 보아오던 호주와는 자연환경이 너무나도 다르다. 이 나라의 자연은 모성적인 우아함과 부드러움이 있다.
뉴질랜드는 원주민 말로는 아오데아로아라고 하는데 이것은 희고 긴 구름이라는 뜻이다. 이 나라의 크기는 영국본토와 거의 같은데 자연의 아름다움은 영국이 문제가 아니다. 참 기막히게 아름다운 곳에 영국이 분가시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샘이 절로 났다.
우리 나라가 해양국이었다면 이곳을 먼저 차지했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인도와 셰익스피어를 바꿀 수 없다는 말이 있지만 이 뉴질랜드는 셰익스피어와도 바꿀 수 있는 그렇듯 값있는 나라가 아닌가 한다.
지금 여객기는 남알프스를 넘어서 남쪽의 크라이스트처치로 향하고 있다. 조감도처럼 펼쳐지는 자연풍경은 정말 황홀하게 해 준다. 자연의 아름다움이란 고스란히 신의 의상이라고 노래한 칼라일의 말이 실감이 날 만큼 이 나라의 대자연에서는 새삼스럽게도 의상만을 고스란히 벗어놓고 오차원으로 사라진 신을 느껴 보는 것이다. <김찬삼 여행기(뉴질랜드서 제1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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