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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실크로드 뚫리는 날, 신세계 펼쳐지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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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호 24면

로마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폴리스는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점령된 뒤 이스탄불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는 ‘도시로’라는 뜻의 그리스어 ‘이스틴폴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사진작가 정철훈

지난 8월 30일, 이스탄불의 아시아 쪽 바닷가인 카드쾨이에 도착했을 때, 우리가 타고 온 투싼 승용차의 계기판에는 25040이라는 숫자가 표시됐다. 지난 3월, 1차로 경주에서 중국 시안(西安)까지 왕복한 거리를 빼고, 2차 구간만 계산하면 1만9600㎞. 톈진(天津)에서 출발한 게 7월 12일이니 지난 50일간 우리는 하루 평균 400㎞ 정도를 달려온 셈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보스포루스 해협 건너 블루 모스크와 아야 소피아의 흐릿한 실루엣을 보노라니 여기가 여행의 끝인가 하는 감회가 들었다.

실크로드 대장정<2부ㆍ끝> ⑦ 터키 이스탄불

거기 카드쾨이에 아시아 대륙 철도의 기점인 하이다르파샤 역이 있다면, 해협 너머 에미뇌뉘에는 유럽 대륙 철도의 시발점인 시르케 지역이 있다. 이스탄불에서 길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데칼코마니처럼 펼쳐지는 도시라는 생각도 들었다. 공교롭게도 하이다르파샤 역 옆 경상북도 실크로드 탐험대를 맞이하는 이스탄불 시청의 환영행사장에는 터키 쌍둥이 소녀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와 있었다.

한국어를 능숙하게 하는 그녀들을 보니, 몇 년 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터키 소설가 오르한 파무크가 쓴 『이스탄불』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 오랜 세월 동안 내 뇌리의 한구석에, 이스탄불 골목들 중 한 곳에, 우리 집과 비슷한 다른 어떤 집에, 모든 면에서 나와 비슷한, 아니 나와 똑 닮은 또 다른 오르한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영역본에서는 이를 ‘또 다른 오르한’이라고 했다가 ‘쌍둥이’로, 다시 ‘더블(double)’로 표현했는데, 나는 이 ‘더블’이 이스탄불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동양과 서양이 서로 뒤섞인 곳이자, 시작인 동시에 끝인 곳.

언뜻 ‘아빠투르크’로도 들리는, 터키의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동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는 환영행사를 보노라니 자연스레 한반도가 떠올렸다. 행사장에서는 ‘칸 카르디쉬’, 즉 ‘피로 맺은 형제’의 나라 한국이라는 말이 자주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터키는 오래전 고구려와 친밀한 관계를 맺은 돌궐의 후예이자 한국전쟁 때 1만5000명의 군대를 파병한 일이 있는 우방이다. 덕분에 직선거리 7900㎞가 그다지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경주에서 직접 자동차를 운전해 이스탄불까지 가보니 그런 친근감이 단순한 느낌에 그치지 않았다. 실제로 아시아의 길은 동쪽 끝 한반도에서 서쪽 끝 아나톨리아 반도까지 핏줄처럼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경부고속도로에 설치된 ‘아시안 하이웨이’라는 표지판에 나오는 길이다. 눈여겨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거기에는 ‘AH1’이라는 도로 이름과 함께 ‘일본-한국-중국-인도-터키’라고 경로가 적혀 있다. 하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이 표지판을 따라간다고 터키가 나오진 않는다.

선진문물은 서쪽에? 이젠 생각 바꿀 때
탐험대는 이번에 한국 번호판을 달고 실크로드 전 구간을 종주했지만 딱 한 곳, 북한만은 지나갈 수 없어 서해 뱃길을 이용해야만 했다. 마찬가지로 1인 독재국가인 투르크메니스탄마저도 육로 통행이 가능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유엔의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ESCAP)가 추진하는 이 프로젝트에 남북한 모두 가입해 이미 문산과 개성이 AH1로, 고성과 금강산이 AH6으로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두 도로는 여전히 통행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폐쇄돼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한국에 있을 때는 표지판을 볼 때마다 마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지켜보는 것처럼 마음이 쓰라렸다. 하지만 이제는 그 표지판은 계속 거기 붙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어떤 꿈을 말하니까. 예전에 자유로에서 ‘개성’이라는 지명을 발견했을 때도 비슷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몇 년 뒤 실제로 개성까지 자동차를 몰고 가는 사람들이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은 다시 끊어졌다가 다시 열릴 채비를 한다고 하나 어쨌든 그 꿈은 이뤄졌고, 자유로는 AH1의 일부가 돼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는 중이다.

내가 사는 일산에서는 10분만 빠져나오면 이 도로 AH1에 연결된다. 언젠가는 터키까지 이 길이 이어지는 날도 찾아오리라. 그때는 아이에게 이 도로를 계속 따라가면 이스탄불까지 갈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 그런 말을 듣고 자란 아이가 사는 세계가 지금과 같을 수는 없으리라.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라도 끝내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새로운 실크로드가 뚫리는 순간, 우리에게는 완전히 다른 신세계가 펼쳐진다.

그 신세계의 모습을 상상하려면 지금까지의 사고방식을 버려야만 한다. 예컨대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실크로드에 남은 한민족의 발자취를 찾고자 했다. 중국에서는 김교각, 원광, 최치원 등 신라 승려들과 유학생들의 흔적을 둘러봤고, 신장위구르의 사막지대와 중앙아시아의 벌판에서는 고선지를 비롯한 옛 고구려인들과 강제 이주한 고려인들의 눈물을 떠올렸다. 그건 마치 한민족이 서쪽으로 어디까지 갔는지 확인하는 일과 비슷했다. 그렇다면 『왕오천축국전』에 근거해 혜초가 갔을 것으로 짐작되는 니샤푸르, 즉 지금의 이란 마슈하드가 바로 서역기행의 끝 지점이 되리라. 이런 식의 답사는 우리에게 놓인 길이란 늘 바깥으로 뻗어간다는 선입견에서 시작한다. 선진문물은 서쪽에 있으리라는 생각 말이다.

그러나 이젠 그런 생각을 바꿀 시간이 온 것 같다. 아시안 하이웨이가 모두 연결돼 새로운 실크로드가 뚫리면, 이 도로는 한국인들만의 일방통행로가 아니라 서로 교류하는 쌍방향 소통로가 될 확률이 더 높다. 왜냐하면 이번 여행에서 만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내게 한국에 꼭 가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었다. 어려서부터 한국 드라마와 K팝을 접하면서 자란 이들이기 때문에 스피커에서 한국 노래가 흘러나오면 다들 합창할 정도다. 한국 문화는 키르기스스탄에서 터키에 이르기까지 중앙아시아 전역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한국 단편소설들을 우즈베키스탄어로 번역해 『별이 뜬 밤』을 펴낸 말로핫은 “한국 소설은 왜 그렇게 슬픈 이야기밖에 없느냐”고 내게 물었다.

내게는 혜초가 이란까지 여행했으리라는 사실보다 한국 문화가 중앙아시아에서 이처럼 매력적인 대상이 됐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이번 여행에서 한국 문화에 빠진 젊은이들을 수없이 만났지만, 그중 기억에 남는 세 사람만 소개하겠다. 우선 사마르칸트 외국어대학교에서 만난 스물두 살의 말로핫. 한국어학과에 재학 중인 그녀는 한국 소설을 우즈베키스탄에 소개하겠다는 열망으로 이미 책을 한 권 번역한 상태다. ‘김연수 씨게 말로핫한테 선물입니다’라는 사인까지 받은 번역서를, 내가 읽을 재간은 없지만,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는데도 그저 좋아서 번역하는 그 열정만은 부럽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 푹 빠진 말로핫·아잘레·소루루
다른 두 명은 이란의 이스파한에서 만난 열일곱 살 동갑내기 친구 아잘레와 소루루다. 이 두 소녀는 한국인이 보고 싶어서 우리를 찾아왔는데, 한국어를 곧잘 했다. 어디서 한국어를 배웠느냐고 묻자, 한국 노래를 듣다가 자연스레 관심이 옮겨가게 됐단다. 놀라운 건 선생님도 없이 자기들끼리 영어로 된 『초급 한국어』를 보면서 공부했다는 점이다. 이 세상 어딘가, 그것도 이스파한 같은 도시에서, 한국어를 독학하는 소녀들이 있다니. 이란 경찰에게 끊임없이 혼나면서도 밤늦도록 행사장을 떠나지 않던 그 소녀들이 휴대전화를 꺼내 내게 자랑 삼아 보여준 것은 씨스타의 노래에 맞춰 춤추는 동영상이었다.

이들은 모두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젊은이들이라는 점, 그리고 경제적 이유가 아니라 문화적 호기심 때문에 한국어를 배운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동서를 잇는 교역로를 실크로드라고 이름 붙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경제라는 건 결국 문화를 사고파는 일이 아니겠는가? 1300년 전, 신라 젊은이들이 서해의 풍랑을 넘어 중국으로 간 까닭 역시 억만금을 줘서라도 구하고 싶은 문화가 거기 있었기 때문이었으니까. 그 열망이 길을 만들었고, 그 길이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관용의 습관을 길렀으며, 이 관용의 습관이 새로운 문화를 낳았다. 한국문화가 거기에 촉매 작용을 한다는 건 멋진 일이다.

앞에서 말한 책의, ‘불행이란 자신과 도시를 혐오하는 것이다’라는 소제목의 글에서 파무크는 고등학생 시절, 자신을 가련하고 위선적인 상태로 빠지게 한 것이 바로 이스탄불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그는 열여섯 살과 열여덟 살 사이에, 한편으로는 급진적인 서구주의자처럼 도시와 자신이 전적으로 서양인이 되는 것을 원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본능과 습관과 추억으로 좋아했던 이스탄불에 속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오르한, 쌍둥이, 더블이라는 건 바로 이런 상태에 놓인 그, 혹은 두 문화가 서로 충돌하는 이스탄불을 뜻한다. 아야 소피아, 성모의 그림 아래에서 메카의 방향을 나타내는 메라브를 발견할 때처럼 이질적이지만 뒤섞인 두 문화는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그 다음 순간,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 일어난다. 두 문화가 공존하는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이다. 한국에서 머나먼 서쪽 끝 이스탄불을 상상했을 때, 그 도시는 꼭 그런 곳일 것 같았다. 부시장과 쌍둥이 소녀가 모든 대원들에게 장미 한 송이씩을 건네는 것으로 이스탄불 시청의 환영행사는 모두 끝났다. 이제 이스탄불에서 머나먼 동쪽 끝 경주를 상상한다면, 과연 그 도시는 어떤 곳이어야 할까? 연재를 쭉 읽어온 독자 여러분과 함께 이 질문의 답을 천천히 알아보고 싶다.



김연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꾿빠이, 이상』 『세계의 끝 여자친구』 등의 소설을 출간했다. 이상문학상ㆍ동인문학상ㆍ황순원문학상ㆍ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한 중견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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