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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종수의 세상탐사

전혀 통상적이지 않은 ‘통상임금’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말 가운데 막상 그 뜻이 뭐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럴 때 국어사전에서 정확한 뜻풀이와 쓰임새를 찾아보면 대부분 의문이 해소된다. 그런데 막연히 그러려니 하고 쓰던 말이 구체적인 이해관계가 얽힌 쟁점이 되면 국어사전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렵다. 용어 해석을 둘러싼 다툼이 당사자 간에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해석 결과에 따라 손익 차이가 막대하다면 최종적인 뜻풀이는 국어학자가 아니라 법관의 손으로 넘어간다.

 지금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바로 올해 노사관계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통상임금’ 논란이다. 지난 5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는 이례적으로 대법관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용어 해석을 둘러싼 공개변론이 열렸다. ‘통상임금’이 도대체 무슨 뜻이냐를 두고 노사 양측 변호인단의 열띤 변론과 전문가들의 참고인 진술을 들은 것이다. 사법부 최고 기구인 대법원 전원합의체조차 ‘통상임금’에 관한 정확한 해석이 어렵다고 보고 최종 판결에 앞서 공개변론을 듣기에 이른 것이다. 통상임금의 뜻이란 게 통상적이고 상식적인 방법으로는 해석하기 어렵게 된 상황이다.

 통상임금 문제가 이렇게 노사 양측이 날카롭게 맞서는 쟁점이 된 것은 애초에 ‘통상임금’에 대한 법 규정이 애매모호했기 때문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통상임금 정의가 아예 없고, 시행령에서 ‘근로자에게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하는 시급·일급·주급·월급 또는 도급금액’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 보니 3개월 또는 6개월 단위로 지급되는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볼 것인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노동계는 상여금이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므로 통상임금이란 주장이다. 반면 사용자 측은 매달 지급하는 월급이 아니어서 통상임금에 포함돼선 안 된다고 맞선다. 통상임금 논란은 이제 통상임금 범위를 정하는 기준을 ‘정기적·일률적·고정적’인 지급방식에 둘 것인지, 아니면 ‘시급·일급·주급·월급’처럼 지급주기에 둘 것인지를 가르는 문장 해석의 논란으로 치닫고 있다. 여기에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 하급심이나 대법관 일부가 참여한 소부의 판결이 엇갈리면서 혼란은 가중돼 왔다. 그러자 대법원이 전원합의체의 판결로 통상임금과 관련한 법리 논쟁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나선 것이다. 더 이상 하급심에서 통상임금에 관해 엇갈린 판결을 내리거나 노사 간에 소송전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다.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대략 연말께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 결과에 따른 경제적 파장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이 최소 38조509억원 늘어나고 일자리가 41만8000개쯤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인건비 추가 부담액을 놓고도 팽팽히 맞선다. 노동연구원은 21조9000억원, 한국노총은 6조원으로 각각 추계한다. 보는 시각에 따라 이렇게 차이가 나지만 어쨌든 지금보다 상당히 늘어날 것이라는 데 양측의 이견은 없다. 노동계 입장에서도 나름 부담은 있다. 인건비 부담 증가에 따른 고용 감소는 물론, 그 혜택이 대기업 정규직에만 집중되고 중소기업 근로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감원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와도 법 규정 자체의 모호성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사법부 판단만으로 통상임금 논란을 잠재우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배경엔 노사정 모두의 안이한 대처가 한몫을 했다. 정부는 모호한 법 규정을 방치해 왔고, 노사 양측은 그동안 임금 협상을 기본급 인상이 아니라 각종 수당·상여금을 신설하는 변칙으로 해결해 왔다. 그 결과 임금체계는 누더기처럼 복잡해져 지금 벌어지는 통상임금 범위 논란의 빌미가 됐다.

 통상임금 범위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피할 수 없는 길로 들어섰다. 그 파장은 클 것이다. 재계에선 대법원이 그간의 관행과 경제현실을 감안해 경과적 유예조치를 포함시키는 절충적 판결을 내리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그에 앞서 노사정위원회의 임금제도개선위원회에서 노사 양측이 통상임금의 범위와 임금체계 개편 방안에 대해 대승적인 합의를 이뤄낸다면 대법원의 부담을 한결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정부 차원에선 대법원 판결과 관계없이 근로기준법이나 시행령 개정을 통해 통상임금 규정을 명확히 해야 함은 물론이다. 노사정 3자의 성숙한 접근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김종수 중앙일보 논설위원 jongs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