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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On Sunday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통합진보당과 거리를 둬 온 PD(민중민주) 운동권 출신 진보정당 활동가 A씨. 그에게 ‘앞으로 진보가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물었다. ‘이석기 사태’로 한동안 진보가 도매금으로 비판받겠지만 종북세력이 위축되면 그에게 어쩌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겠다 싶어서였다.

 그런데 그는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이석기 사태 뒤에도 후속 세대를 충원하는 건 통진당보다 우리가 더 어려울지 모른다. 종북세력인 경기동부연합은 1990년대 말, 2000년대를 넘어오면서 서울 주요 대학 학생운동 조직과 공고하게 결합했다. 그때 수혈된 젊은 피가 (만 33세인) 김재연 의원 등이다. 경기동부는 ‘주체사상이 사람을 중시한다’며 인간적인 정과 매력으로 대학생들을 사로잡는다. 기존 질서에 대한 불만도 자극한다. 그렇게 포섭된 학생들의 충성심은 놀라울 정도다.”

 지금 당장은 종북세력이 척결될 것 같지만 ‘이석기 키즈’를 재생산할 조직과 구조가 워낙 튼튼하단 걸 잊어선 안 된다는 지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들’을 잊고 있었다. 지난해 통진당 비례대표 부정경선의 폭력사태에 참가하고, 어버이날에 이석기 의원 페이스북에 카네이션 꽃바구니 사진을 올리던 2030세대 말이다.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통진당엔 2030 젊은이들로 구성된 학생위원회가 있다. 20여 개 대학 총학생회가 활동하는 NL(민족해방) 계열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과도 가깝다고 한다. 이 단체의 일부 간부는 통진당의 RO(혁명조직) 회합에 참석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들에게 총기 무장과 산업시설 공격을 거론한 4050 주사파들의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연락이 닿은 이들은 “보수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당 인터넷 게시판을 보니 이들은 “국정원의 내란음모 조작사건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를 해치는 일”이란 논리를 펴고 있었다. “오늘 대학생 두 명이 당원 가입서를 줬다. 탄압받는 여기가 진짜라고 생각했다면서”라는 학생위원회 소속 여대생의 글도 올라왔다.

 이런 이석기 키즈들이 다 종북은 아닐 거라 믿고 싶다. 하지만 그들이 향후 종북세력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통진당이 해산되면 모든 게 다 끝날 것’이라고 낙관해선 안 될 듯하다.

 경기동부연합의 기원을 추적해 온 임미리(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의 말에도 귀를 기울일 만하다. 그는 “수십 년간 폭력과 빈곤으로 낙인찍힌 곳에서 성장한 인물들이 사회적 차별과 배제의 기억을 운동 역량으로 동원해 주사파가 주축을 이루는 정치세력으로 성장했다”고 했다.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우리 사회가 건강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만들지 않으면 경기동부연합 같은 부류의 종북세력이 또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백일현 정치부문 기자 keysm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