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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김찬삼 여행기<호주에서 제20신>|인공도시「캔버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호주 알프스라고 불리는 스노·마운틴즈를 보고는 이 나라의 서울 캔버라로 향했다. 거리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세계 각국에서 수집했다는 4백만 그루의 가지가지 나무들이 울창하게 서 있는 것이었다. 1년 내내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게 만들었으니 이 서울거리는 만국수목 전시장이라고나 할까, 공원이라기 보다도 화원이라는 것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마치 만국기가 휘날리듯 여기저기 거리에 서 있는 나무들은 바람에 흔들리며 군무를 추는 것 같다.
그러나 일본에서 보내왔다는 벚꽃 나무는 있으면서도 우리 나라의 나무가 없는 것은 서운했다.
이 수도는 계획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거리는 매우 정연하게 도시미가 넘친다. 게다가 나무에서는 새들이 울어서 에덴을 방불케 한다.
캔버라가 이루어지기까지에는 많은 파란이 있었다고 한다. 1911년 호주 연방정부가 태어날 때 시드니와 멜버른이 서로 수도가 되기 위하여 맹렬한 싸움이 벌어졌었다. 이 같은 쟁탈전을 피하고 엄정 중립주의로 나라를 다스리기 위하여 이 두 도시의 거의 중간지점을 택하여 연방정부 직할지로 했다. 도시계획의 설계도를 전세계에서 공모하여 무려 1백37편이 살도 했는데 미국 시카코의 이상주의 건축가인「월터·벌리·그리핀」의 것이 당선되어 그의 설계대로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서울이름을 지은 데는 아직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하나 있다. 즉 당시 연방정부청사의 기공식을 할 때 그 머릿돌에 총독부인이 수도 이름을 캔버라라고 한다는 선언이 적혀 있는데 이 말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당국도 절대로 비밀에 붙이고 있다니 아직도 이 서울이름의 참뜻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이 도시를 영겁의 수도로 하기 위한 무슨 미신에서 그 러는 것이 아닐까. 한편 이 나라의 원주민의「만나는 곳」이란 말뜻이라고도 하지만 알 길이 없었다.
캔버라 는 순전히 인공적으로 만든 도시로서 상업이나 공업과는 거리가 먼 정치도시이며 학술도시다. 그러니까 소음이 틀릴 것도 없고, 떠드는 사람도 없으며 매연이라고는 없어 깨끗하고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가장 아름다운 때는 가을이라고 하지만 초겨울의 도시풍경도 역시 아름다 왔다.
플라톤은 그 옛날 이상국가를 세우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캔버라는 한 정치도시이긴 하지만 플라톤의 이상국가 못지 않게 훌륭한 도시가 아닌가 한다.
이것은 외모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무엇하나 흠을 잡을 수 없을 만큼 짜여있다. 지금은 세계에서는 피를 흘리며 으르렁거리고 있건만 이 나라 전체는 물론, 특히 이 서울은 지극히 평화스러우니 말이다. 짙푸른 하늘아래 펼쳐진 이 도시는 과연 유토피아였다.
이 서울의 지형이 또한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원형극장)처럼 만인 앞에서 공정한 정치를 할 수 있는 기분이 들게 하도록 만든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의사당에서는 영국의회자체가 그렇듯이 여-야당이 서로 마주보며 때로 유머를 섞어가며 정론을 하는 것이다.
이 나라 국민의 약 90%는 아시아 민족의 이민을 환영하여 지나친 백호주의는 배격한다고는 하지만 이 서울에서 특히 느낀 것은 아직도「앵글로·색슨」의 긍지가 강하게 풍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지나친 우월감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그런 고루한 로컬리즘 보다는 유니버설리즘을 지닐 뿐 아니라 쾌락주의를 인생의 모토로 하고 있으면서도 이율배반적이랄까 백호주의의 그림자가 아직도 엿보인다는 말이다.
전쟁박물관에는 태평양전쟁 때 시드니 항을 공격했던 일본군의 자그만 특공 잠수정이 있다. 한 때 처칠이 말한 것처럼 전쟁의 기계라 할 일본군에서 공포를 느꼈다지만 시민은 이젠 그 여운마저 깃들이지 않으며 지금의 세계적인 전란 같은 것도 안중에 없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보다 멋지게 사는가 하는 것에 만 힘을 기울이는 듯 했다. 캔버라는 완성된 도시가 아니라 건설되고 있는 도시다. 양차 대전으로 제대로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 인구는 10만인데 멜버른 등지에서 여러 기관이 차차 옮겨옴에 따라 자꾸만 늘고 있어 금세기 말까지는 25만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확대되더라도 끝내 정치와 학술을 아울러 지닌 이상적인 전원도시로서 국한시키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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