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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전의 25시(9)|미24사단의 혈투(3)|「6.25 20주 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미 제24사단의 21연대가 조치원을 포기하고 후퇴한 다음 날인 7월13일에「워커」중장은 「맥아더」원수의 명령에 따라 한국에 있는 모든 미 지상군의 작전지휘권을 인수했다. 대구에 사령부를 설치한 워커 중장이 이때 인수한 유엔군 병력은 모두 7만6천명으로서 미 지상군 1만8천명에 한국군 5만8천명이었다.
「위커」중장은 적을 금강과 소백산맥을 잇는 선에서 저지하고 일본으로부터 한국으로 이동 중인 미제1기병사단을 18일까지 포항에 상륙시켜 고전중인 미 제24사단을 증원코자 하였다. 이래서「워커」장군은 7월13일에 다음과 같은 작전명령 제1호를 하달했다.

<금강라인서 반격전 계획>
①미제8군은 적의 전진을 지연시키고 현 방어선을 확보하고 상황을 안정시켜 차기공세를 위해 필요한 병력을 집결한다.
②미제24사단은 적을 금강 선에서 저지하라. 미제25사단은 중부산악지대에서 방어중인 한국군을 지원하라. 또한 l개 대대로 포항시와 비행장을 경비하라. 「워커」중장은 이상의 작명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때까지만 해도 북괴군 침공을 금강 선에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사태를 지나치게 낙관한 것은 사실이었다.
한편「워커」중장이 지휘권을 발동한 그 다음날인 7월14일 이승만 대통령은 유엔군 총 사령관「맥아더」원수에게 <한국군도 함께 지휘해주기를 바란다>고 제의, 정일권 참모총장에게 <귀관은 차후부터 유엔군 사령관의 지휘를 받으라>고 구두로 명령했다. 이어 이대통령은「맥아더」원수에게 서한형식을 통하여 한국군의 작전 권을 위임했다. 이 조치는 어떤 성문화된 조약은 아니지만 현재까지도 효력을 가지고 있다.
「맥아더」원수는 이대통령의 이 서한제의를 받고 7월17일에「워커」중장에게 한국 지상군도 함께 지휘할 권한을 부여, 한국에 있어서의 작전지휘 체계는 확립 단일화했다.

<대통령서한으로 작전권 이양>
▲이승만 대통령이「맥아더」원수에 보낸 서한내용
『대한민국을 위한 국제연합의 군사적인 공동노력으로 말미암아 귀하가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고 대한민국과 그 인접지역에서 싸우고 있는 모든 국제연합군이 귀하의 작전지휘하에 편입되게된 사실에 비추어 본인은 현재의 전쟁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대한민국의 육해공 전군의 작전지휘권을 귀하에게 이양함에 있어 직접 귀하 자신이나 대한민국 내 또는 그 인접 해역에서 동 작전 지휘권 행사에 관하여 귀하에게서 권한을 받은 지정 또는 각급 지휘관들이 동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이를 이양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귀하의 작전지휘하에서 그 임무를 수행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며 대한민국 국민과 정부도 또한 우리들의 공동의 전투 노력에 대한 전반적인 지침을 우리들이 자랑하는 조국의 독립과 통일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가증스러운 침략에 저항하기 위해 힘을 뭉친 국제연합에서 위임된 군사지휘권을 장악하고 있는 고명하고 탁월한 무인에게서 받게된 사실에 대해 긍지와 고무를 받게된 것입니다. 후략. 이승만』
『7윌15일자 이 대통령의 서한을 통하여 그가 취한 조치에 대한 본관의 탐심한 사의를 이대통령에게 전달하여 주기를 바랍니다. 이로써 한국지역에서 작전 중인 국제연합군의 협조력의 증진은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되었습니다. 본관은 용감한 대한민국 군을 본관의 지휘하에 두게된 것을 충심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중략.
길은 비록 멀고도 험난한 것이나 최종 결과는 승리로 귀착될 것이 틀림없을 것이므로 결코 낙심하지 말라고 이대통령에게 당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더글러스·맥아더」』

<매일 만톤식 군수품 양륙>
유엔군의 작전지휘권 단일화와 함께 미군의 방대한『물량 작전』의 일환인 보급품이 속속 부산항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부산에는 매일 평균 20척의 선박이 들어와 하루 1만6백여톤의 물자가 양륙됐다. 7월2일부터 31일까지 사이에 30만9천톤의 방대한 군수물자가 부산항을 통해 들어왔다. 유엔군이 끝까지 낙동강 교두보를 지키고 반격 북진할 수 있었던 것은 물자작전의 힘입은바 컸다. 이 수송을 저지 방해할 수 있는 해-공군이 북괴에 없었다는 것은 그들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북괴도 매일 양육되는 1만여톤의 보급품이 그들 진공을 둔화시키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김일성은「스탈린」에게 잠수함으로써 부산항을 봉쇄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소련은 전면전 발발을 염려하여 이 요청을 거절했다는 것이다.

<국적 불명의 잠수함이 구주·대만·화북연안에 출몰하고 있다>는 7월18일자의 미국무성 경고성명은 이때의 긴박한 정세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제 이야기를 다시 금강·대전 공방전으로 돌려 미제24사단의 전투상황을 각종 관계 자료와 기록에서 뽑아 종합해 보겠다.

<1주일 전투 4전5백명 손실>
「딘」소장은 천안이 떨어졌을 때만해도 금강을 부철 수선으로 청하려고 했다. 피해가 없는 제19예비 연대를 투입, 사단의 전력을 기울여 북괴군 진격을 금강에서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21연대가 조치원에서 큰 타격을 받아 24사단의 현 병력은 1만1천4백 명으로 줄어들었다.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에는 1만5천9백명의 병력이었던 것이 1주일간의 지연전부에서 4천5백명(그중 1천5백명이 실종)의 병력과 3개 대대분의 장비를 상실했다. 7월13일의 24사단 각 연대병력을 보면, 21연대 1천1백명, 34연대에 2천명, 19연대 2천2백명, 사단포병 2천명이었다.
「딘」사단장은 이런 상태로서는 금강 라인을 지탱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금강이 있기 때문에 며칠은 막을지도 모른다. 남안을 확보 못하면, 경부선정면의 부대와 공주방면의 부대와 연결을 유지하면서 대전으로 구심적인 후퇴를 하여 여기서 수일간 싸우면서 미제1기병사단의 내원을 기다리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대구의 워커 사령부에서는 적을 금강이남으로 진출시키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으며 또한 부하들의 사기도 고려하여 표면으로는 금강 불 철수를 주장했다.

<적도하 보고도 포격 안해>
7월12일 하오에 24사단은 경부 본도의 대평리 정면에 19연대와 사단포병 주력을, 공주정면에는 34연대를 각각 배치하고 21연대는 대전 비행장에 집결, 재편을 서둘렀다. 「딘」장군은 12일과 13일 밤에 공병대로 하여금 금강교와 철교를 폭파시키고, 그 밖의 나룻배·뗏목 등을 모두 태워 버리도록 했다. 이래서 금강에는 적이 이용할 수 있는 도하자재는 없다고 판단했지만, 이것은 잘못이었다.
한편 북괴군 제4사단은 11일에 재빨리 정찰대를 금강 남안에 잠입시키고 12일에는 주력을 공주 북안에 집결, 13일 하오부터는 남안의 미군진지에 맹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포격 후 북괴군은 2척의 나룻배로 한번에 30명 정도씩 도하했다. 날씨가 좋아 미군포병의 관측기들이 이를 발견, 포격지휘소에 보고했다. 이 보고를 받은「찰즈·바다」소령은『그런 소 목표는 포격할 필요가 없으며, 곧 공주 북방에서 적의주도하가 있을 터이니 그때 한바탕 퍼붓자』고 했다. 그리나 아무래도 좀 켕겨서 나중에서야 포격을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적 야크기의 내습으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궤멸한 줄 알았던 북괴 공군기가 대전공방전에는 간간 출현했었다. 이러는 동안 약 5백명의 북괴군이 금강 남안에 상륙 교두보를 확보했다.


이 방면의 미군34연대 L중대장 아티·스티스 중위는 대대본부와 연락을 취할 수 없게 되자 진지를 버리고 논산으로 후퇴했다. 스티스 중위는 15일에 무단후퇴로 몰려 파면됐는데 이 L중대는 평택과 천안에서도 불미한 전투기록을 남긴 부대였다.
L중대가 후퇴할 때 인접의 제63포병대대에 적의 도하를 알렸으나, 이 경보는 흐지부지됐다. 14일 하오 1시께에 제63포병대대 경비병들이 적의 근접을 보고했지만 우군일지 모르니 사격해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지시를 받았다.
북괴군은 소수의 경비병을 내몰고 기관총으로 포병진지에 일제 사격을 가했다. 동시에 적의 박격포격이 대대지휘부에 집중되면서 4백명의 북괴 보병들은 4개 포병중대를 차례차례로 유린했다. 1시간반의 이 공격으로 미제63포병대대는 전 야포인 10문의 포와 군량 86대가 파괴되는 한편, 대대장대리와 A중대장을 비롯한 1백36명의 병원을 상실했다. 적도하 저지에 큰 기대를 걸었던 미 포병대대는 별 포격도 가해보지 못하고 대 타격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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