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폭력과 어머니의 사랑|양구·진주 사건이 주는 교훈|서울대의대 교수 이부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진주에 이어 양구에서 최근 잇딴 납치사건이 신문 사회면을 어지럽히고 있어 세상이 이제 어떻게 되려나 공연히 걱정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일은 지금 새삼스러운 것이 못 되고 남의 나라에도 있고 옛날에도 있던 일일 테니까 너무 공포감을 느낄 필요는 없겠고 다만 이 기회에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차분히 생각해보는 것이 더 중요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이번 일은 특수한 사건이지만 일반 청소년의 폭력 사건과 공통된 문제를 안고있기 때문에 어디 먼 곳에서 난 화재처럼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신문 보도만 가지고 상황을 판단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지만 거기 알려진 몇 가지 사실 만보고 나는 우선 여성의 역할이 남성의 폭력 행위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가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진주에서는 사랑하는 여자가 상심하여 자기를 만나주지 않는 마는 것이 직접 화근이 되었다고 하고 양구의 불행한 청년은 사춘기 무렵부터 계모 밑에서 자라났다고 한다. 그러나 진주의 경우는 애인과 함께 다방에서 마지막 이별을 할 수 있었고 남자는 감옥에 갔으나 여자의 굳은 사랑의 언약을 받은 반면 양구의 청년은 마지막 인질로 남은 다방 내지 마저 잃어버리고 혼자서 발광을 하다가 구결하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두 사건이 모두 다방에서 끝을 보았다는 것도 심리학적으로 우연이라 할 수 없고 그 사람들에게 주는 소읍 다방의 어머니로서의 생리를 잘 보여주는데 한 남자는 다방에서 여자의 사랑 속에서 붙들리고 한 남자는 여자의 버림 속에서 죽었다.
양구의 청년이 여자인질을 그대로 두었다면 그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흑은 또 하나의 죄 없는 여자가 그와 함께 죽었을 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모두 가난했고 두 사람은 다 군부에 있거나 있었으므로 총을 다를 줄 알았다. 총과 여자인질과 다방의 요소들 뒤에 무슨 뜻이 있는가를 여기서 같게 이야기할 겨를은 없다. 눈에 띄는 것은 이 사람들을 설득했거나 설득하러 나선 사람은 여자가 아니라 같은 왕래의 남성이었다. 형님이 아니면 전우였고 경상도 말을 쓰는 신문기자였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 같다.
청소년범죄에서 가장 문제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사랑이다. 어머니는 아들이 이 세상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이성이다. 어머니의 건전한 사랑은 아들을 건전하게 하고 어른을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될 거름 이 된다. 그러나 어머니가 너무 아들을 끼고 돌면서 그가 어른이 되어 독립하는 것을 막는다면 아들은 너무 거름을 주어서 시들어 버린 화초처럼 상처를 입게된 것이다.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따듯한 정을 줄 수 없거나 아예 어머니가 없으면 사랑에 굶주린 아이들은 어미니 대신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헤매는 나머지 제때에 제대로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 채 항상 누구에게 의지하는 사람이 되고 그것이 안 될 때는 자기도 모르게 발광하게 된다.
세상의 어머니 가운데는 이렇게 너무 자식을 끼고 도는 어머니와 자식을 내버려두는 어머니의 두 종류가 있다. 둘 다 참다운 사랑이 아니다. 그리고 둘 다 문제아동, 문제 청소년을 만드는 원인이 된다. 그러니 건강한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얼인지 모른다. 그리고 어머니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어머니만으로 처리할 수 없는 일도 많다. 어머니가 불안한 마음을 가졌으므로 자식에게 사랑을 줄 수 없다면 그것은 아버지 탓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 깊이에는 누구에게나 창조적인 면도 있지만 사람답지 않게 파괴적인 요소도 지니고 있다.
인류는 아직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평화를 원하지만 지구상에는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은 합법적으로 살인을 하고 있다. 인간의 불행, 범죄영화, 납치기사들 보는 우리의 마음이 심상치 않고 혀를 차면서도 무언가 흥분을 느끼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 내용이 자기마음속에 도사리고있는 어떤 초인적인 힘과 맞아 들어가기 때문이다. 자식에게 항상 선해지라고 가르치고 좋은 것만 보여주고 나쁜 것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왜 우리자식은 깡패가 되었는가 하는 부모가 있다.
나는 그분들에게 묻는다. 부모들은 자기자식에게 하는 그 좋은 말씀을 진실로 믿고 있으마 그대로 실천하시는지 혹시 간혹 가다가 자기마음 속의 폭력에 시달리거나 그것에 사로잡히지는 않는지. 건강한 태도란 책에 적혀있는 글자나 사회가 좋다는 것을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마음에 성실해지고 꾸밈이 없는 것 것인데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와 함께 이 어려운 일을 참을성 있게 노력해가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