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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주도해야할 문제|이채진<미 캔자스대 부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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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고대 아세아 문제 연구소 주최고 진행된 한국 통일문제 학술회의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국내외의 여러 문제를 다각도로 비교 검토함으로써 많은 성과를 보았다. 물론 이러한 국제 회의에서 참가자들 사이에 명확한 견해의 일치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한국인들이 통일문제에 관한 주도권을 발휘하면서 복잡하고 급변하는 국제환경을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해야만 주체성 있는 통일 방안이 가능하다는 점에는 모두가 동감을 표시했다.
특히 박대통령의 8·15 성명과 관련하여 극단화한 남-북한의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평화적 통일론을 재 강조할 필요가 절실하다는 것에도 대체적인 합의를 보았다. 그러나 긴장완화가 가능한가, 혹은 어떻게 그것을 실현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에는 많은 불일치점이 노출되었다. 남-북한의 교류 유엔에의 동시참가, 남북한의 협상, 국제 중립과 연방제 등 여러 방안과 절차에 대해 솔직하며 진지한 논쟁도 있었다.
더 우기 김일성 체제의 해석, 북한의 자유화 가능성, 한국의 정신적 및 정치적 자세, 주요 강대국간의 상호이해관계 그리고 세계 정세의 대국적인 방향 등에 관해서도 전문학자들간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고 본다.「닉슨·독트린」에 따른 주한 미 국군이 철수문제, 중소분쟁이 내포한 한반도에의 영향, 최근 호전되어 가고 있는 중공과 북한과의 관계 그리고 한-일 관계의 본질과 수단에 대해서도 예리한 분석이 시도되었었다.
이번 회의에 참석하여 느낀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로 통일이라는 한민족의 염원을 고려하는데 있어서 외국 학자들이 피상적으로 접근하라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한국학자들은 다소 감정적으로 혹은 감상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었고, 둘째로 여러 통일 방안의 상소 비교 연구가 부족하며, 셋째로 동일 지상론의 허점이 현저한 듯 하다.
즉 우리 나라가 통일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기대할 것이 아니라 국내외 사정의 변화에 따라 통일이 되었을 경우에 당면할 혼란과 불안, 그리고 군사적·행정적·문화적·사상적인 통합 과정을 어떻게 하면 평화스럽고 효과 있는 가운데 촉진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학자들이 충분히 연구해야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학술회의를 통해 제기된 통일에의 열의와 연구가 앞으로 더 건설적이고 책임 있는 방향으로 확장 진행될 것인가 아니면 용두사미 격으로 타락하거나 백가쟁명식으로 후퇴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위정자의 현명, 학자·언론인 등 지성인의 노력 그리고 대중요구의 참다운 발전에 달려 있다고 본다.
한국통일은 우리 민족의 장래를 결정할 관건일 뿐만 아니라 극동, 나아가서는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도 직결된 어려운 문제이므로 꾸준하고 성실한 거족적인 대화와 논의를 위한 자유스러운 광장을 마련해야 되겠고, 한국 민족의 주도권과 국제 환경이 조화 균형 하는 가운데 통일에의 방안을 모색하려는 투철한 역사적인 방향 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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