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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김을한|해방에서 환국까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다음은「맥아더」원수의 수기의 일부이다.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분명한 정책이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덜레스」 는 동경에 돌아와서 국무장관에게 다음과 같은 전보를 보냈다. 즉 한국이 자력으로 공격을 저지 또는 격퇴하지 못할 경우 소련의 반발이 생기더라도 미군을 동원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이 까닭 없는 무력공격에 석권되는 것을 내버려둔다면 필시 세계대전은 재발하게 될 것이다.
한국군은 당시 38도선에 대비, 4개 사단을 가지고 있었다. 이 병력은 잘 훈련되고 또 용감스러우며 애국적이었다.
그러나 전선부대로서가 아니라 단순히 경찰군의 장비와 기구밖에 없었다. 병기는 고작 병 화기뿐이고 정규의 육·해·공군 마저 없으며 전차, 대포, 기타 전선부대가 필요로 하는 무기가 아무 것도 없었다.
한국군의 장비와 기구가 이 정도면 된다는 결정은 국방성이 내린 것이었다. 국무성은 한국이 북한을 공격하는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그러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으나 이 근시안적 이론은 북괴로 하여금 공격의 기를 터준 것이나 마찬가지 결과가 됐다. 북괴의 공격을 막아 낼만한 준비를 한국 측에 해주지 못한 것은 치명적인 잘못이었다.
북괴군이 전차, 중포, 전투기 등 한국군에게 없는 장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전쟁도발 가능성을 이미 충분히 내포하고 있는 것임에도 태평양의 정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사실상 어두운「워싱턴」사람들에 의해서 한국군은 무장을 소홀히 한 것이었다.
그들은 한국이 무력으로 남북 통일하려는 것을 막는다는 것에만 눈이 팔려 북괴가 도리어 그것을 감행하리라는 점을 생각지 못한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에 있어서 소총밖에 없는 10만의 경찰 군이 소련에 의해서 훈련되고, 온갖 근대병기로 무장된 20만의 북괴군과 대결한다는 비극을 빚어냈던 것이다.
공산 측에서는 이 공격을 비상히 교묘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38도선 부근에는 한국군과 거의 같은 정도의 가벼운 장비만 배치, 기만 전술을 썼고, 그 배후에 최신형의 소련 제「탱크」를 포함한 중화기로 장 비한 강력한 공격부대를 집결시키고 있었다.
따라서 남침 시에는 우선 경장 비를 한 제1선 부대로 하여금 38선을 넘어 습격하자 즉시 좌우로 퍼져 공격하게 하고 그 중간에 생긴 공간에는 중화기 주력부대를 집어넣어 한국군을
무찌르면서 무적의 현세로 남하하기 시작하였다.
「트루먼」대통령은 나중에 이 전쟁에「경찰행동」이라는 추상적인 명칭을 붙였으나 이것이「경찰행동」이나 국경을 침범 해 온 북괴 병을 추적하는 국지적인 행동정도가 아니라 훨씬 중대한 사건이라는 것이 공격을 받은 직후에 이미 명백해졌다. 공산주의는 조선을 무대로 해서 자유세계에 도전해온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결단의 때였다. 이것이「공산제국주의」와의 교전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명백하였다.
세계의 역사가 인류의 시작부터 가르쳐온『주저는 분쟁을 초래하고, 용기는 불행을 막는다』는 교훈을 지금이야말로 잘 음미할 때였다.
전기한 바와 같이 한국이 독립하기 5개월 전에「애치슨」국무장관은 미국이「아시아」에서 군사적인 공격에 대해서 보장할 수 있는 지역으로부터 한국을 확실히 제외하고 있었다. 그후 미국의 통합 참모 본부가 작성한「아시아」방위의 전략 계획에도 미국은 어떤 경우에든 한국반도의 군사적 방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전제돼 있었다. 나는 극동에 있어서의 공산 세력의 위협이 점차 심각하게된 사실을 알리려고 힘썼으나 도무지 효과가 없었다. 1949년에서 다음 해인 50년 6월까지 사이에 나는 북괴의 남침위기가 시시각각으로 임박해 오는 것을 끊임없이「워싱턴」에 보고했다.
그럼에도 전반적인 무관심과 중공은 다만「농지개혁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일부의 그릇된 견해 때문에 전혀 반응이 없었다. 당시 내가 제출한 보고서 가운데에는 북괴군이 38선을 넘어오는 시기는 바로 1950년 6월께 일 것이라고 예상을 말한 것도 있었다….>
이「맥아더」원수의 회상록은 그가「유엔」군 사령관을 파면 당한 뒤에 쓴 것이므로 6·25전란 당시에는 그 내막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이다. 영친왕은 군사전문가인 만큼 「맥아더」원수의 전략전술을 누구보다도 높이 평가하였으며 그에 따라 소위「병 주고 약주는 식」의 미국의 한국에 대한 정책을 불만하게 생각해서『「엉클·샘」(미국 사람)도 이제는 좀 정신을 차려야지-』하고 항상 입버릇처럼 말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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