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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흐르는 별은 살아 있다」의 저자「등원데이」여사의 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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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온 누리가 하얗게 눈에 덮였던 날, 나는 세 어린것들을 데리고 먹을 것을 찾아 나섰다. 살점을 에이는 바람에 눈가루가 회오리쳐 올라가는 눈길을 걸었다. 여름이라면 둑에는 버들명아주(일본 명「아까자」)도 있고 개천가에는 쑥이나 미나리 같은 것도 있겠지만 백설의 광야에는 마른 무 꽁지나 우거지 잎 하나도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눈이 부시는 먼 선원의 위에 까만 점을 찍어놓은 것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영양실조로 희미해진 시력의 환각이 아니었나 하면서 확인하러 가보았다. 그것은 죽은 까마귀였다. 나는 세 아이의 손을 잡고 그 자리서 되돌아섰다.
얼마쯤을 걸었는지 모른다. 얼어붙은 눈길을 미끄러지는 애들을 부둥켜 일으키면서 걸었 다. 마을의 어느 외딴집을 찾아 기어올라갔다.
『4, 5일 동안 아무 것도 못 먹었습니다. 뭐든 먹을 것을 좀 주세요.』
그 집 아주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추워서 떨고 있는 어린애들을 측은한 얼굴로 쳐다보더니만 내가 갖고있던 보자기를 뺏어 안으로 들어갔었다. 누룽지를 한보자기 싸 가지고 나오는 것이었다.
『참 안됐군요. 고생합니다.』
아주머니는 그 한마디로 위로해 주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주머니, 고마워요. 정말 고맙습니다.』
하며 나는 그의 등뒤에다 몇 번이나 절을 했는지 모른다. 눈물이 마구 쏟아지는 것이었다.
그래도 어린 아들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나는 뒤돌아 서서 얼굴을 닦고 닦으며 언덕의 그 외딴집에서 내려 왔다.
이윽고 봄이 오고 또 여름이 왔다. 몸은 영양실조 제3기에 빠져 있었다. 어깨에서 앞가슴까지 해골처럼 말라붙은 데다가 아랫배만이 볼록했고 발등은 푸릇푸릇한 반점이 나타나며 부어 올랐다. 일본인의 거의 전부가 이런 꼴을 하고서 먹을 것을 얻으려고 거리를 방황했다.
시장 바닥에서 마늘·파의 찌꺼기를 주워 다 삶아먹는 정도의 나날. 날이 갈수록 신체는 쇠퇴 일로 일수밖에는 없었다. 큰딸은 생후 1넌이 됐는데도 앉지도 못하고 기어다니지도 못하고 잔뼈만 앙상했다. 검은 머리털이 회색으로 변했고 그 열이 계속 되었다. 무조건 소금 국을 먹일 때만「우후후…」하고 웃음소리를 낼뿐이었고 움푹 들어간 눈동자는 이상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내애는 온몸이 부스럼 투성이가 되어『엄마 배고파, 배고파』하고 울고 울었다. 나중엔 목이 쉬어서 울지도 못하고 길바닥에 지쳐서 잠들기가 일쑤였다. 그리고 그 야윈 목엔 보리 알 만씩 한 이가 기어다니고 있었다.
『이러고만 있어 가지고선 안되겠다. 이 상태로 있다가는 내일의 생명을 알 수 없겠다. 어쨌든 이곳을 탈출,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한 걸음이라도 좋으니 일본 족으로 가까이 가자.』 이와 같이 결심한 우리들 일본인 몇 가족은 1946년 8월1일, 인천에서 탈출했다.
그러나 까마득한 38선까지 홀몸도 아니고 세 어린애를 데리고 견디어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을 것 같지 않았고 또 자신도 없었다. 자신이 있다 손치더라도 만약에 소련군에게 잡히기만 하면 그땐 죽음을 당할 것 같았다. 이러나 나는『앞길은 운명에 맡긴다. 어쨌든 한 걸음이라도 38선을 향해 전진하자』고 이를 악물었다. 내일의 운명을 알 수 없는 죽음과 모험의 도보행진에 나섰다.
낮에는 둑 아래 숲의 그늘에 숨어서 잠을 자고 밤에만 별빛을 의지해 남으로 남으로의 행진을 계속해야 했다. 며칠을 걸었는지 알 수도 없었다. 시계가 있을 리 없고 날짜를 헤어볼 힘도 없었다. 20일쯤 되었을까? 그것도 짐작이었다. 이땐 이미 나의 주위에는 같이 떠나왔던 일본인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뒤에 처진 것이 아니면 딴 길을 찾아간 것인가?』
그러나 나는 여기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소나기가 무섭게 쏟아지는 칠흑의 밤이었다. 어린것들이 개천에 빠질까봐 손에 손을 잡고 황토 흙 언덕길을 기어오르다가 쭉 미끄러졌을 때다. 둘째 놈이『어머니, 눈이 안보여…』진흙 투성이의 손등으로 눈을 비벼 얼굴전체가 흙으로 덮였으니 앞이 보일 리가 없었다. 그 다음엔 큰놈의 차례였다.
『엄마, 신발 한 짝이 없어졌어….』
등에 매달린 채 아무 소리가 없는 딸은 어찌되었나? 울지도 않고 꼼지락 가리지도 않고 있으니, 잠자고 있는 것인가? 손을 등뒤로 돌려 발을 만져보니 아직 따듯한 체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직 살아 있다. 힘을 내자 힘을 어떠한 일이 있고 어떻게 해서든지 일본에 살아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나의 어린것들에게 이렇게 외쳤던 것이다.
그러고도 몇 날을 걸었는지 모른다.
어떤 미로에 빠져버린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가 나의 어깨를 흔드는데 놀라 눈을 떠보니 우리들 네 식구는 마을의 길바닥에 나란히 누워 있었음을 알았다. 몇 시간 동안을 이 길바닥에 누워있었던 것인지 전연 분간할 수 없는 의식불명의 상태에서 깨어난 것이다.
『물을 좀 주세요. 물 한 그릇만….』
나는 두 손을 합장, 마을 사람에게 물을 달라고 했다. 물 한 그릇만 얻어 마시면 그 자리에서 죽어도 한이 없을 성싶을 만큼 갈증이 엄습해 왔다. 그 마을 사람은 시원한 물을 한바가지 떠다 주는 것이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맙습니다』고 감사하자
『자 이젠 힘을 내십시오. 마을 앞 언덕을 넘으면 미군의 수용소가 있으니까….』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리고 나는 그 마을 사람의 말소리와 그의 모습이 마치 꿈속에 현몽하는 신의 목소리와도 같이 들렸고 나를 구해준 신의 모습과도 같아서 하얀 여름옷 차림의 그를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고마워요. 참으로 고마워요.』
한참동안 이 말을 되 뇌이다가 나는 다시 의식을 잃어버렸다.

<「등원데인」 여사의 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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