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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기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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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현대 서구인의 기질은 「돈· 키호테」정신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 평론가가 있었다. 영국의 문학평론가 「엘리어트」는 『「유럽」인으로서 「돈·키호테」를 읽어 소화하지 못한 사람은 진정으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까지 말한다. 「돈·키호테」는 「스페인」의 작가「세르반테스」의 명작에 나오는 인물이다. 자칭 기사인 그는 종잡을 수 없이 저돌적(저돌적)이다. 풍차 앞에서도 서슴지 않고 칼을 빼어든다. 기사라고는 하지만 그가 타고 다닌 말은 깡마른 당나귀 「로시난타」였다.
그러나 그의 행동을 좌우하는 가치기준은 어디까지나 인간애에 있었다. 인간애는 곧 정의감이요, 의협심이다. 다만 그것을 표현하는 행동이 기괴할 뿐이다. 묵은 제도와 인습과 갖은 속박과 절제 속에서 자유인이 스스로 해방감을 누릴 수 있는 길은 그러나 그것뿐이다. 더구나 그 동기가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면 그를 무뢰한으로 칠 수는 없다.
오늘, 「유럽」인의 「리버럴리즘」은 바로 이런 정신에서 순화한 것인지도 모른다. 서구인의 「유머」정신도 마찬가지다. 「체코」청년들이 소련군에 항거할 때, 대로상에서 약속이나 한 듯이 남녀노소들이 일시에 휘파람을 불어 야유했던 일은 얼마나 유쾌한가.
교전중인 적대국 사이에서 「이스라엘」청년들은 「레바논」의 「베이루트」공항 국기 게양대에 기어올라 「레바논」의 기를 내리고 난데없이 「이스라엘」기를 올렸다.
이것 역시 「돈·키호테」적인 사고이며 모험이다.
어느 시대에나 어느나라에나 이런 유쾌한 「돈·키호테」기질을 가진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오히려 그런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통쾌한 해방감을 느낀다.
손기정 선수(마라톤)가 「베를린·올림픽」(1936년)에서 우승했을 당시, 그의 가슴에 새겨진 일장기를 한국의 신문에서 말소했던 것도 역시 「돈·키호테」적인 애국심 때문이었다고나 할까. 우리 국민들이 그때에 가슴으로 느낀 뜨거운 열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것은 감히 당시의 사회상황으로나 여건으로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 아닌가. 이번에 박영록 의원의 「베를린」모험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국의 국회의원 신분으로 그것도 외국에서 탈법적인 행동을 한 것은 그리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베를린·올림픽」기념탑에 치욕처럼 새겨진 「MARATHON SON JAPAN」을 보는 한국인이면 누구나 울적한 감정을 억누를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값싼 애국심도, 유치한 무엇도 아니다. 평범한 한국인이라도 당연히 품을 수 있는 자연감정이다. 박 의원은 다만 그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실로 오늘의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온순·방정·순종 그것보다도 이처럼 「돈·키호테」적인 기질인지도 모른다. 유약한 성품의 청년들을 볼 때마다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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