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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종홍·장숙진씨 내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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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백년해로」의 가연으로 맺어져 한 지붕 밑에서 고락을 같이하는 부부―. 이들이 엮어 가는 「가정」은 사회의 기본단위며 국가의 원동력이다. 이 「시리즈」는 본지 3일자(지방은 14일자) 4면의 「도의문화 심포지엄」서 다룬「부부」를 이어받아 한국의 대표적 부부 상을 찾아보는 것이다.
1934년 맑은 봄날 서울에서 결혼한 박종홍 장숙진씨 부부는 혜화동 22의 35 아담한 한옥에서 36년 동안 살며 5남 2녀를 낳아 길렀다. 너무나 평온했던 부부생활, 그러면서도 일제하의 고통, 조국의 해방, 6·25 동란 등 나라의 영욕과 수난을 몸으로 막아 자녀들을 보호해야했던 전형적인 한국부부의 모습으로 그들은 함께 살아왔다.
평생 결혼 안 했던 「칸트」와 「쇼펜하우어」, 그리고 악처에 시달렸다고 전해지는 「소크라테스」의 일화 등을 듣고 나서 「철학자」란 우선 사생활이 평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관을 갖게된 많은 사람들이 박교 수의 원만한 가정생활에 인사를 던지곤 한다는데 박교수는 이럴 때마다 『철학이 뭐 그리 이상한 학문인가』하고 웃어버리지만 장 여사는 『남편이 일생을 바쳐온 학문인데 왜들 잘못 이해할까』 섭섭한 마음이 솟는다고 한다.
한번은 동창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남편은 철학자』라고 직업을 말했더니 누가 『철학이 뭐지?』물었다. 옆에 앉아있던 고등학교 다니는 한 동창생의 아들이 『길에 다니면 동양철학 간판이 많찮아』라고 대답했는데 장여사는 그때 『설명하기도 힘들고 설명할 수도 없는 곤란한 마음으로 가슴이 뛰었다』고 말한다. 「따분하다」고 표현되기도 하는 「학문의 길」을 내조해온 반평생에서 짜증과 원망대신 학자의 권위를 인정하게된 지혜로운 여성, 그리고 농담으로라도 남편의 일을 함부로 말하지 않는 애정 깊은 아내의 모습을 비춰주는 일화라고 할 수 있다.
경성제대 대학원 학생이던 32세의 박 교수와 서울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인천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25세의 장 여사는 중매를 섰던 은사 조재호씨에게서 너무도 많은 상대방의 칭찬을 미리 들은 나머지 얼굴을 보기도 전에 사모하는 마음이 싹터있을 정도였다. 박 교수는 아내를 맞기 위해 혜화동에 새로 집을 지었고, 이 집은 결혼 15년만에 일곱 자녀가 늘어 매우 시끄러운 집이 되었다. 박 교수는 아우를 보고 칭얼대는 아이들을 데리고 자야했고 기저귀를 갈아주어야 했으며 아이들이 책상 위에 올라가 오줌을 싸는 대로 걸레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부부상조의 모습에서 『깊은 부부애의 감명을 받았다』고 말하는 박 교수의 제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일곱 자녀는 모두 자랑스럽게 자라 위로 두 아들이 미국서 화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세째는 의사, 네째는 화학을 공부하러 8월초에 도미, 다섯째 역시 서울대에서 물리를 전공하는 등 모두 이공학도들이고 영문학을 전공한 큰딸은 미국서 결혼, 막내딸은 이대에서 「피아노」를 공부하고 있다. 이들 자녀에게 특별한 주문을 하지는 않았으나 한가지 「성실한 한국인」으로 성장하기를 빌었었다고 부모는 말한다.
자녀와 아내에게 다정한 아빠노릇을 하는 박 교수지만 『지금까지 선물하나 사다준 일없다』는 게 장 여사의 불평. 몇 차례의 외국여행에서 책만 잔뜩 사들고 돌아와서는 늘 하는 똑같은 변명이 『백화점에 다녀봐도 책밖에는 살 것이 없더라』는 것.
67년 둘째아들이 박사학위를 받을 때 함께 도미했던 부부는 귀로에 세계일주여행을 했는데 그때도 박 교수는 가는 곳마다 아내를 책가게 앞에 세워두고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만 골라 장 여사는 무료하게 가게 앞에 서있어야 했다. 거리를 걸을 때는 화려한 가게의 「쇼윈도」를 자주 쳐다본다고 야단맞기 일쑤였다.
『부부가 「스위스」의 호수가에 서면 「아, 아름답다」고 의견이 딱 일치하는데 가게 있는 거리에만 가면 의견이 안 맞으니 웬일이죠』라고 박 교수는 웃는다.
「어려운 일은 늘 계속 일어나는 것 같아요. 젊어서는 학문을 배워 목표를 달성하느라고 어려웠는데 나이 70이 되니 건강이 걱정이군요. 아내가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어줘도 앉아서 책만 보려니까 소화가 걱정이 되어 많이 먹지 못하고 그래서 또 늘 아내는 걱정이랍니다.』
키가 큰 가냘픈 몸매에 희고 깨끗한 얼굴의 장 여사는 남편과 멀찌감치 떨어진 의자에서 가끔 미소지으며 말을 듣기만 하고, 박 교수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그들의 부부생활을 이야기한다.
『30년 넘어 함께 살다보니 내일에 관해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내 아내라는 느낌이 강해지고 그 믿음 속에 사랑과 공경의 마음이 우러나오는 것 같습니다.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언제나 나를 편하게 해주는 가정을 꾸며온 내 아내에 대해 고맙다는 생각이 절실해 지기도합니다. 이 세상에 행복이란 게 있다면 상대방에 대해 속으로 고맙다고 느끼는 상태가 아닐까요.』 평범한 나날을 시들지 않게 지켜온 비범한 아내는 시선을 약간 밑으로 보낸 채 조용히 웃고만 있다. <장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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