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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현욱의 과학 산책

은하수 중심의 거대 블랙홀, 삼키던 가스 토해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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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
코메디닷컴 편집주간

우리 은하, 즉 은하수의 중심에 있는 거대질량 블랙홀(궁수자리 A*)이 뜻밖의 행태를 보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자신이 빨아들이던 가스의 99%를 다시 토해내는 것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찬드라 엑스선 우주망원경이 관측한 자료에서 새로 드러난 사실이다. 관련 논문은 지난달 30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됐다.

 블랙홀이란 밀도가 엄청나 일정한 경계 안에서는 빛조차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천체를 말한다. 태양보다 30배 이상 무거운 별이 폭발하고 남은 중심 핵이 붕괴해 생기며 질량은 태양의 3, 4배인 것이 보통이다. 질량이 태양의 100만~100억 배인 것은 별도로 ‘거대질량’으로 일컫는다. 모든 은하의 중심에 이런 것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기원은 미스터리다.

 ‘궁수자리 A*’의 질량은 태양의 400만 배, 지름은 태양의 11배다. 블랙홀은 보이지 않지만 주변의 물질이 끌려들어갈 때는 강력한 전자파가 방출된다. 하지만 궁수자리 A*에서 방출되는 빛은 매우 약해서 그 원인을 두고 많은 이론이 경쟁해 왔다. 이번 논문을 발표한 미국 매사추세츠대학교 애머스트 캠퍼스의 연구팀은 “물질이 블랙홀로 추락하는 과정에서 다시 밖으로 유출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직접 증거가 처음 확인됐다”고 말했다.

 찬드라 망원경은 문제의 블랙홀을 둘러싸고 있는 뜨거운 가스 구름에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고온의 가스가 저온의 것보다 양이 훨씬 더 적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물질은 블랙홀을 향해 추락하는 과정에서 마찰열 때문에 온도가 높아지게 마련이다. 관측 결과는 이와 상반되기 때문에 고온 가스가 외부로 방출됐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는 분명치 않으며 사라진 고온 가스의 행방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번 관측에서는 주변의 가스 구름이 어디서 왔는지를 추정할 수 있는 증거도 발견됐다. 구름의 형태가 해당 블랙홀 주위를 원반 모양으로 돌고 있는 무거운 별들의 분포와 매우 비슷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무거운 별은 그 바깥쪽으로 수많은 입자를 초고속으로 방출하는데 이들이 서로 충돌해 플라스마 구름을 형성한 것으로 해석된다. 경쟁하는 이론 중 일부는 몇 개월 내 검증될 수도 있다. 이 블랙홀과 충돌하는 코스로 이동 중인 소규모 가스 구름이 있기 때문이다. 구름의 온도가 낮기 때문에 거의 전부가 궁수자리 A*에 먹혀버릴 것으로 추정된다. 과학계의 눈길이 쏠리는 빅 이벤트다.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코메디닷컴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