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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戰 터지면 최대 피해자는 세계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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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비틀거리는 세계증시도,추락하는 달러가치도,모두 임박한 이라크 전쟁 탓인가.

그렇다면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말처럼 이라크전이 조기에 성공적으로 끝나면 경제의 불확실성이 제거돼 소비와 투자가 늘고 세계경제는 되살아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22일자)에서 낙관론자들의 이라크 전쟁관을 조목조목 부인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라크전 이후 세계 경제가 반등하리라는 기대는 미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튼튼하다는 잘못된 가정에 근거한 것이며 미국 경제엔 아직도 제거할 거품이 많다는 것이다.

미국 경제의 침체 이유를 정부.가계.기업 등 3대 경제주체의 부실에서 찾은 후 그에 맞는 처방전을 내야지, 이라크전에 경제침체의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다음은 이라크전 후 경제의 낙관론에 대한 이코노미스트의 반박논리다.

◇과소 평가된 전쟁비용=미국 의회예산국은 이라크전의 비용을 국내총생산(GDP)의 0.5%인 5백억달러 정도로 추산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전쟁이 지연될 경우 군사비는 1천5백억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역사적으로 정부가 추정하는 전쟁비용이 항상 과소 평가됐고, 승리할 가능성은 과장됐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 남북전쟁 당시 링컨 정부는 전쟁비용이 GDP의 7%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했지만 실제로는 예상치의 12배에 달했다.

◇단기전땐 주가.달러 가치 급등?=한국전쟁 기간 중 미국 주가는 28% 올랐다. 91년 걸프전이 시작된 후 4개월간 S&P500 지수도 20% 이상 상승했다.

그러나 지금 미국 주가는 주가수익비율(PER)을 감안할 때 91년 당시보다 비싸다. 더구나 그때와 달리 지금은 모든 애널리스트들이 이미 단기전을 예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가가 오르기보다는 더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달러 가치가 하락한 데는 이라크전이 물론 한몫을 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두 달간 달러 가치가 10% 올랐던 걸프전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걸프전 때는 총 전쟁경비 8백억달러 가운데 단지 40억달러만 미국이 부담했다. 나머지 전비는 아랍국가와 일본이 분담했다. 이런 비용들이 미국으로 이전되면서 91년 미국의 국제수지가 균형을 이뤘고, 결국 달러 가치를 밀어 올렸다.

그러나 이라크전은 미국이 군비를 전담해야 하는 데다 미국은 이미 GDP의 5%를 넘는 경상수지 적자를 안고 있다.

◇개전 직후 유가 급락?=낙관론자들은 90년 걸프전이 시작되자마자 유가가 폭락했던 것처럼 이라크전이 발발하면 유가가 배럴당 20달러 선으로 곤두박질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걸프전때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최근의 유가 급등은 이라크전보다 베네수엘라에서의 파업 탓이 크다. 베네수엘라 파업은 끝났지만 올해도 예년 생산량의 3분의 2 수준을 회복하지 못할 것으로 이코노미스트는 전망했다.

또 석유 비축분도 걸프전 때보다 적다. 91년에는 석유 비축분이 평상시 수준을 웃돌았지만 현재 미국의 석유 재고량은 75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역시 생산을 늘릴 여유가 별로 없다. 90년에는 하루 6백만 배럴을 더 생산할 여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겨우 2백만 배럴을 더 늘릴 수 있을 뿐이다.

골드먼 삭스는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이라크전이 조기에 끝나도 유가는 향후 1년간 27달러 이하로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유가가 10달러 오르면 세계 경제는 0.6%만큼 위축된다고 분석했다.

이 증권사는 "베네수엘라 파업과 이라크전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경우 유사 이래 가장 강력한 오일 쇼크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뾰족한 정책수단이 없다=오일쇼크는 우선 기업에 원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해 생산을 위축시키고 소비와 투자 등 원유 수입국의 수요도 끌어내린다. 결국 경제는 뒷걸음질치고 물가는 오를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각국 중앙은행은 경기상황에 따라 금리를 내려 경기를 부양하거나 반대로 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을 억제해야 한다. 지난 네 차례의 오일 쇼크는 모두 호황기에 발생했기 때문에 각국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가 아직 불황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기업들도 유가상승으로 인한 원가상승 압력을 가격에 전가할 여유가 없다. 따라서 유가상승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위험보다 기업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크며, 이는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덩달아 위축시킨다. 따라서 현재 각국은 금리를 더 내리는 게 바람직하다.

문제는 각국 중앙은행의 손발이 이미 묶여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미 금리를 1.25%까지 내려 추가인하의 여력이 별로 없다. 유럽의 경우 금리(현재 2.75%)는 더 내릴 여지가 있지만 인플레이션에 더 신경쓰는 눈치다.

재정정책의 경우 일본은 이미 공공부채가 심각하고 유럽지역도 재정 건전화 협약에 의해 정부의 지갑을 마음 편히 풀기 어렵다.

리먼 브러더스는 전쟁이 조기에 끝나도 북한 핵 문제와 테러 위협 등으로 인한 불확실성은 여전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오히려 73~74년 오일쇼크 때보다 세계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더 클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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