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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평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전운 22년의 중동 하늘에 한줄기 빛이 보이고 있다. 아랍 대통령 나세르는 지난 23일 혁명 18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미국의 평화 안을 수락했다. 『…정직하게 말하면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기회는 이때다』.
로저즈 제안이라고도 하는 미국 평화 안의 골자는 ①3개월간의 정전 ② 유엔 대사 「구나르·V·야링」(스웨덴 외교관) 의 주재로 이스라엘·아랍 연·요르단이 간접적인 회담을 벌인다는 것이다.
나세르 대통령의 말마따나 이것은 67년의 6일 전쟁이래, 줄곧 반복되어 온 것의 반복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세르는 『예스』를 했다. 제안자인 로저즈 국무장관의 말은 뉘앙스가 있다. 『내 평생의 변호사 생활을 통해서, 강자가 흥정을 하려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이 말은 한마디로 아랍의 지위 변화를 반사하고 있다.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내내 수세로만 몰리던 입장이 지금은 좀 달라진 현실을 돋보이게 한다. 최근 이스라엘의 「팬텀」기가 「아랍」권 상공에서 미사일에 의해 번번이 격추 당하는 꼴을 보게 된다. 그것은 물론 소련 제이다. 뿐만 아니라 소련은 「아랍」군의 전술 개선에까지 깊숙이 관여해 오고 있다.
그러나 나세르가 소련 방문을 마치고 돌아와서 미국 측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아이러니컬」하다. 미국은 한편 워싱턴에서 도브리닌 반미소 대사를 통해 접촉하고, 다른 한편으로 소련은 모스크바에서 나세르를 설득하는 이원적인 「드라머」-.
이스라엘 은 이 경우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골다·메이어」수상은 공연히 「아랍」의 군비만 강화하는 시간을 주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에반」외상도 역시 기한부 정전은 전쟁의 다른 한 국면에 불과하다고 불쾌해 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과 아랍 사이에, 그리고 소련과 이스라엘 사이에 누군가는 가교를 놓을 만도 하다. 입장은 이처럼 뒤바뀌어 버린 것이다. 만일 가교를 통해 어떤 보장만 받을 수 있다면 우선 『눈은 눈으로, 이빨은 이빨로!』의 전쟁 일변도는 피할 수 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반발을 달랠 수 있는 마지막 카드는 아직 감추고 있다. 군원·경원의 커트와 미국 내 유태계의 극성에 대한 찬물을 끼얹는 방법 등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런 와중에서 새삼 새로운 형의 분쟁 해결 방안을 보게 된다. 아랍의 지위가 끝내 약자의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적당히 강화된 연후에 미국과 소련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협상에 팔 걷고 나선 사실이다. 중동형 평화 안 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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