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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달러」의 도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모국 방문 길에 오른 재일 교포 학생은 경비를 몽땅 도난 당했다. 이에 5만4천 달러, 자기앞 수표 85만원, 한화 1만5천원 등 합계 1천7백만원 상당.
경찰은 특별 수사반을 편성하고 외화 암시장을 봉쇄, 사건 발생 17시간만에 범인을 검거했다. 이처럼 거액의 현금을 도난 당한 일은 일찍이 없었다. 더구나 이 학생들은 생전 처음으로 모국을 찾아온 2세 국민들이다. 조국은 이들에게 민족적 자긍과 인정을 불어 넣어줄 아량과 의무를 갖는다. 경찰 당국이 특별 조사를 벌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의 돈 가방은 서울역 광장에서 없어졌다. 학생들에게 배급을 하고 있는 동안 인솔자는 그것을 잠시 옆에 놓아두었었다.
이것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누가 흉기를 들고 위험한 것도, 강탈 도주한 것도 아니다. 「코넌·도일」의 탐정 소설도 무색할 일이다.
「로마·올림픽」(1960년) 당시 이탈리아의 도둑들은 스스로 낙향을 결의한 적이 있었다. 에피소드 하나. 어느 외국 대표가 로마 공항 로비에서 백을 잊어버린 채 그냥 놓고 나왔다. 얼마 후에야 그 사실을 알고, 주인은 공항으로 달려갔다. 뜻밖에도 그 자리엔 종이 한장이 놓여 있었다.
『당신의 백은 한 시민의 선의에 의해서 당신의 숙소로 옮겨졌습니다. 로마 경찰 백』
도둑에게 높은 도덕심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국가에 대한 깊은 사의가 있었던들, 그와 같은 몰염치의 행동은 없었을 것이다. 국가의 긍지를 위해서라면 스스로 컵은 손을 숨길 줄 아는 로마 도둑놈의 신사도가 부럽다.
그러나 도난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의 공동 여비를 일본에서 예치, 한국으로 송금하는 모 절차를 밟지 않은 것은 이상하다. 그 이상 안전한 길은 없을 것이다. 현금 상황은 어디서나 위험 천만한 일이다.
당국은 이와 같은 신용 절차의 간접화에도 보다 성의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교포 학생 단이 부산 입항 즉시, 그 거액의 현금이 은행에만 예치되었어도 도난은 피할 수 있었다. 그들은 반드시 그 많은 돈을 현금으로 갖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불신 사회에선 모든 사고가 이처럼 현금주의로 흐르기 쉽다. 지폐보다는 현금으로, 은행 금고보다는 자신의 안주머니 속에, 약속보다는 에고이즘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려는 것이다. 신뢰의 회복은 바로 현금주의를 청산하고, 도둑을 막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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