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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한반도 지정학 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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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용환
베이징 특파원

한때 태자당(혁명원로 자제들)의 선두 주자였던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서기의 재판이 한창이던 지난 주말.

 베이징 외곽 도로에선 굉음이 이어졌다. 순간 가속도를 높이기 위해 수천만원을 들여 튜닝한 5억~6억원대 고급 외제차들이 그들만의 레이스를 펼친 것이다.

 가뜩이나 공산당 관리들의 부정부패와 심화되는 빈부격차에 지친 인민들에게 혈압을 치솟게 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보시라이의 아들이 천정부지의 수퍼카를 타고 희희낙락했다는 소문이 재판 과정에서 사실로 굳어지면서 광란의 레이스는 묘하게 보시라이의 얼굴과 포개졌다.

 주도권을 놓고 제로섬 경쟁을 벌여온 공산당 좌우파의 이념 대립에 대한 관심은 재판이 끝나면서 다시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경제정책에서 시장의 힘을 강조하는 우파와 마오쩌둥(毛澤東)식의 평균주의로 적게 먹더라도 같이 잘 살자는 좌파의 세계관 갈등은 근본적으로 조화점을 찾기 어렵다.

 이런 좌우파가 대북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사안에서는 격렬한 충돌 없이 호흡을 맞추는 게 참 신기하다. 며칠 전 사석에서 만난 중국 외교계 인사는 여력이 안 돼 북한에 대한 지원을 포기하면서 대북 레버리지를 잃은 소련과 러시아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시진핑(習近平) 지도부에 퍼져 있다고 전했다.

 중국에서는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를 절대 불변의 원칙으로 삼는 대북·대한반도 전략이 확립돼 있다. 이 원칙 아래서 북한의 붕괴를 막기 위해 생명줄을 연결시키고 지속적으로 원조해야 한다는 전통주의 목소리와 북한 문제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으니 적절히 제어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입장이 갈릴 뿐이다. 국력이 상승하면서 대미 관계에 자신감을 쌓은 시진핑 지도부는 한반도 전체를 시야에 넣고 지정학 게임을 하고 있다는 정황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탈북자 김광호씨 가족의 한국행만 해도 그렇다. 베이징 외교가 인사는 “김광호씨 케이스는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북한에 되돌려 보낼 수도 있었기 때문에 가슴을 졸인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중국이 남북한을 상대로 통합적 접근을 하면서 이런 변화가 나왔다는 것이다.

 2011년 10월 시진핑 지도부의 실세 총리로 내정됐던 리커창(李克强) 당시 부총리는 남북한을 하루 간격으로 찾았다. 외형상 남북한 균형을 맞추겠다는 셈법이다. 올해 6월 박근혜 대통령 방중 때는 인민대회당 금색대청(金色大聽)에서 만찬이 열렸다. 이전에는 러시아·베트남 정상과 김일성·김정일 부자에게만 허용했던 국제정치학의 공간을 내놓은 것이다. 중국이 북한·북핵 문제 해결의 유용한 조력자 위치에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이런 중국 카드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한반도를 보는 중국의 관점까지 포괄하는 전략적 사고가 시작점이다.

정용환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