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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국방회담의 폐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전 국민의 비상한 관심을 모아 오던 「호놀룰루」한·미 국방장관회의는 23일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막을 내렸다.
공동성명은 『북괴의 계속되는 침략행위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면서 일단 유사시에는 『한·미 방위조약에 의거, 즉각적이며 효과적인 협조』를 제공하겠다는 미국의 『용의와 결의』를 재확인한 것 외에도 특히 한국사태의 긴박성을 고려하여 『태평양지구 타 미군기지로부터 일부 미 공군기를 한국내 기지로 이동시킬 것』과 『상당수의 S-2형 해군 초계기를 한국에 제공』키로 한다는 것 등 구체적인 합의사항의 일부를 밝혀 주고 있다. 다만 이 공동성명이 이번 회담의 핵심이었다고 볼 수 있는 주한미군 감축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하지 않고 이틀 앞으로 있을 「워싱턴」 또는 서울에서의 한·미 고위정치회담에서 매듭짓게될 것임을 강력히 시사하는데 그치고 있음은 여러모로 주목할 만한 일이라 할 것이다.
생각컨대, 미국이 움직일 수 없는 기정방침이라고 못박았던 주한미군 감축문제에 대한 언급이 이번 공동성명에서 완전히 누락된 것은 「선 보장·후 감축」을 주장하는 우리측 주장이 너무도 확고부동한 것이었을 뿐더러, 감군 문제가 공식 제의된 이후, 세계여론의 대세가 명백히 이를 위협하고 시기 상조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으로 기울어 졌기 때문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때문에 주한미군의 감축문제는 이제 단순히 군사문제의 영역을 벗어나 보다 높은 정치적 차원에서의 판단을 기다릴 수밖에 없게된 것이 분명한 것이요, 이점 우리측 입장의 정당성을 끝까지 고수하여 감군 문제를 후일의 고위정치회담으로 미루어 놓는데 성공한 정 장관 일행의 외교 교섭은 일단 성공한 것으로 높이 평가해야 할 것으로 안다.
그러나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군 장비가 낡았다는 점을 시인케 하고, 한국군 장비 현대화가 시급하다는 점을 동의케 하면서도 그 구체적인 개선책이라 할 수 있는 군사원조의 증강, 방위산업의 건설문제에 대해서 종전부터의 한·미간 양해사항 이상으로는 일보도 전진치 못한 인상을 준 것은 우리의 입장에서 유감스럽다 아니할 수 없다. 이번 회담에서 한국 측은 한국군의 취약성이 무엇 무엇이며 또 이를 보완키 위해서 당장에 필요한 장비가 무엇 무엇인가를 대체적으로 제시했는데, 미국 측은 장기에 걸친 개선과 계속적인 협의만을 약속하고, 우리측이 요구하는 조속하고 구체적인 군원 제공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회피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측의 장비개선을 위한 요구조건을 일일이 검토하고, 답변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탓도 있겠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의 공화당 정부가 오는 11월에 있을 중간선거를 고려하여, 해외에 대한 군·경원 증액의 언질을 주기를 될 수 있는 대로 회피함으로써 납세자인 미국 국민들의 심리에 영합하려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임을 부정 못한다.
지난 3일 미국 상원 해외세출 분위의 증언에서도,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은 한국군의 장비가 노후했으니, 그 개선이 시급한 과제임을 밝힌 바 있었다. 이러한 미국정부가 한국군 장비 현대화를 위한 본격적인 노력을 게을리 해 왔고, 또 이번 회담에서도 한국군 장비 현대화를 위한 한국 측 요구조건을 즉각 충족시켜 주려는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북괴의 군사력을 과소평가하고 한반도에서 전면전쟁이 일어날 위험성이 별로 없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상 적침 역량의 과소평가가 전쟁유발과 직결돼 있음은 미국 측이 더 잘 알 것이다. 우리는 미국의 행정부나 의회가 한반도 사태의 긴박한 양상을 에누리없이 직시하고, 남·북간에 군사력상 불균형이 절대로 조성되지 않도록, 맹방으로서의 최대한의 지원을 신속히 제공해 주기를 재차 요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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