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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세계의 나그네/김찬삼 여행기<뉴칼레도니아도서 제2가>|「석기시대」를 사는 뜨거운 우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서울 「누메아」에 구경온 어떤 원주민을 사귀었는데, 그는 부디 자기 고향에 가서 며칠 묵고 가라고 하며 나의 팔을 끌어 당겼다. 이들의 애정은 열대의 이글이글 불타는 태양처럼 강렬했다. 그의 집엘 가니 그의 아내며 어린애들이 또한 열광적으로 반겨주었다. 저녁을 얻어먹고는 우리 나라 호랑이 놀이를 하느라고 어린애를 내 등에 태우고 어흥어흥하고 기어다니니까 온 가족이 재미있다고들 야단이었다. 저녁때가 되어 집 뜰에서는 귀뚜라미인 듯한 곤충의 노래 소리가 들렸다. 고국에 대한 「노스랠지어」가 불현듯 솟구쳤다.
이 원주민의 집에서 새삼 느낀 것은 「루르게녜프」의 산문시 『개』에서 사람과 개의 정신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노래한 것처럼 비록 미개한 인종이긴 하지만 문명인의 지성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등잔불을 끄고 단간방에 이 집 가족과 함께 누웠다. 문으로 내다보이는 하늘가의 별들은 영롱하고 귀뚜라미 소리는 더욱 쟁쟁하게 귓가에 들려왔다. 그새 친해진 어린애들은 네 옆에 와서 자겠다고 자기 어머니 품에서 자겠다고 자기 어머니품에서 빠져나와 내 아랫도리에 그 조그만 다리를 올려놓고 쿨쿨자기 시작했다. 무한한 애정이 솟구쳤다.
이튿날 아침 이 집주인은 멧돼지 사냥이나 해보자고 하면서 내게 창을 들려주었다. 이 섬엔 앵무새·「잉꼬」·비둘기와 더불어 멧돼지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차마 살생을 할 수 없어 거절했더니 그는 매우 섭섭해했다. 나를 위해서 사냥을 하여 멧돼지 고기의 ????을 베풀어주겠다고 하는데 거절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의 보람으로서는 멧돼지를 잡았다는 여행기를 실리는 것이 흥미 거리 일지는 모르나 어진 짐승들이 이 학원에서 즐거이 노닐고있는데 어찌 낮선 나라 사람이 와서 가혹한 살생을 하랴. 이것은 결코 다음에 내가 인과응보로 불우한 일을 당할까봐 두려워서 그러는 것도 아니며 종교적인 박애주의만을 생각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었다. 전세계의 문명인은 나날이 사상의 갈등으로 극악해가는 지금 산 속에 사는 어진 짐승들의 생명이 사람보다 더 고귀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멧돼지 사냥을 못 가는 대신 그의 도움으로 벽지를 가볼 수 있었다. 이 섬의 원주민들은 긴 기둥을 새우고 그 위에다 원두막처럼 높이 집을 짓는, 딴 섬사람과는 달리 나지막하게 짓고 산다. 그것은 이 섬에는 맹수며 뱀들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딴 제도처럼 활을 쓰지 앉는 것이 특색이며 사냥을 합 때에는 식물에서 빼낸 독 을 칠한 창을 쏜다. 이같이 아직도 이들은 석기시대에 사는 셈이다.
원주민들은 거의 고수머리에다 얼굴이 넓적한 「멜라네시아」인종이지만 머리카락이 곧고 얼굴이 좁은 「폴리네시아」 인종도 살고 있다. 그런데 이 섬의 원시적인 「멜라네시아」 사람들도 딴 제도의 「멜라네시아」 인종이 그렇듯이 이 섬대로의 독특한 풍속을 지닌다.
마을 어귀 같은 데에는 우리 나라 천하대장군의 목상과도 같은 목 조각이나 또는 무기 따위를 세워둔다. 이것은 자기들이 받드는 조상들의 영혼의 영원한 안식을 위하여 악마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섬은 배서에서 남동쪽으로 뻗친 좁고 긴 섬인데 환초로 둘러싸여 있어서 자연적인 훌륭한 방파제가 될 뿐만 아니라 아열대이면서도 해양으로 둘러싸여 봄과 가을이 길기 때문에 대평양제도 가운데서는 가장 기후가 좋은 곳이다.
그래서 여기 사는 백인들은 딴 온대로 피서여행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말라리아」며, 황열병 따위의 열대병이 없어서 이상적인 요양지 이기도 하다.
이 섬엔 지하자원으로서 여러 귀중한 광물이 나오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니켈」 이며 그 생산량은 「캐나다」 다음가는 세계 제2위를 차지한다. 광구는 온 섬의 약3분의1의 면적을 차지하니 그대로 보물섬이며 「프랑스」의 금고라 할 수 있다. 더구나 노천굴이 많아서 손쉽게 파내니 노다지를 거저 얻는 셈이다.
바닷가에는 「니켈」 제련소가 있어서 요란한 소음이 들려오고 높은 굴뚝에서 시꺼먼 연기를 뿜고있으며 항구에는 수십 척의 광물수송선이 「바다의 엘레지」라 할 뱃고동을 올리고 있다. 이런 문명의 소음 때문에 남태평양에 대한 꿈과 낭만은 깨어지는 것 같아 아쉽기도 했다. 광구가 되는 산들을 무자비하게 파헤치니 원주민들은 자기의 주권을 찾겠다고 「데모」를 벌일 법도한데 보고만 있을 뿐이다.
식민지정책에 있어서 「프랑스」사람 같은 행운아도 없지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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