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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도 원폭 투하 때 미군 포로도 죽었다|당시 수용소감독 유전씨 목격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25년 전 8월6일 미국 폭격기가 인류사상 처음으로 「히로시마」에 원자탄을 투하했을 띠 23명의 미군포로가 수많은 일본인들과 함께 죽었다고 한 목격자가 11일 말했다. 이목격자는 당시 「히로시마」에 있던 3개 전쟁 포로수용소 감독 책임을 맡고 있던 전 일본군준위 「야나기다·히로시」씨(56)이다.
그는 「로이터」기자와의 회견에서 희생된 23명의 미군 포로들은 세계 2차 대전 당시 「히로시마」현 상공에서 격추된 미 공군 폭격기의 승무원들이었다고 밝혔다.
그의 말에 의하면 희생된 23명의 미군 포로 중에는 한두 명의 여인도 끼여 있었다고 한다. 「야나기다」씨는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됐을 때 시내 중심부에서 1천m 직경 내외에 있었던 사람은 거의 즉각적으로 떼죽음을 당했는데 그가 감독하고 있던 포로수용소도 이 거리 안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25년 전 8월6일 상오8시15분 현지시간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됐을 때 자신은 시내 중심부에서 약5백80m 떨어진 「아파트」에 있었으며 포로수용소를 경비하던 일본 군 장병들은 수명을 제외하고는 몰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시의 숨은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나의 부하중의 한사람이었던 「구라모도」중사는 원폭으로 박살난 포로수용소 건물 더미 속에서 기어 나오는 미군 포로1명을 발견, 그를 구출, 함께 시내를 빠져나가려고 걸었으나 강변에 도달했을 때 원폭세례를 받은 일본 시민들이 미군 포로를 보고 그를 구타하기 시작했고 「구라모도」중사는 기진맥진 정신을 잃었는데 다음날 현장에서 벚나무에 매달려 맞아 죽은 미군 포로의 시체가 발견됐다.
당시 「히로시마」에는 미군 포로가 23명뿐이었고 이들의 군번이 적힌 금속표는 전쟁이 끝난 후 미군 당국에 의해 본국으로 보내졌다. 나 자신도 원폭으로 화상을 입었으나 수혈로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지금은 일을 하면 곧 피로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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