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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조작, 편파 판정, 횡령 … 체육단체 비리 파헤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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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박근혜정부가 체육 행정 혁신을 위해 메스를 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6일부터 체육단체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대한체육회는 물론 국민생활체육회, 대한장애인체육회와 이 조직의 시·군·구 조직까지 감사 대상이다. 노태강 문체부 체육국장은 “체육단체의 공정성·윤리성 훼손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근본 원인을 찾고 개선 방안을 마련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법령 개정을 통해 일선 체육단체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한국스포츠공정위원회’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문체부는 이에리사 새누리당 의원과 함께 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9월 정기국회를 통해 국민체육진흥법을 개정한다는 계획이다. 법이 개정되면 스포츠공정위원회는 등록 체육단체에 대한 조사 및 감사, 체육 비리 조사, 분쟁 중재, 승부조작 조사 및 제재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막강한 기구가 된다.

 정부가 발벗고 나선 것은 공명정대해야 할 스포츠가 도리어 부조리의 온상이 됐고, 자율적으로 이를 해결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5월에는 인천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A씨가 자신의 아들과 제자가 오랫동안 특정 심판의 편파 판정으로 피해를 봤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며 쇄신 방안을 주문했다. 충북카누연맹 총무이사 B씨는 충북도에서 카누 경비정 구입 등의 명목으로 총 1억2858만원의 보조금을 받아 연맹 전무이사 C씨와 함께 개인 빚을 갚거나 도박에 쓴 혐의로 지난 5월 구속 기소됐다.

 세종시 체육회는 지난달 국민권익위 감사에서 직원을 부당채용하고 수천만원을 횡령했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이를 전면 부인해 논란을 빚고 있다. 대구아이스하키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D씨는 대구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실내 빙상장의 수입금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26일 불구속 입건됐다. 역도연맹은 이달 초 국가대표 총감독이 여자선수를 성추행했다는 추문에 휩싸여 곤욕을 치렀다. 역도연맹은 7월 말 이 문제에 대한 진정서를 받고도 이를 쉬쉬하고 숨겨 비판을 받았다. 불과 몇 달 새 체육계에서 불거진 사건이다. 프로스포츠에서는 지난 몇 년간 축구·야구·배구·농구 등에서 잇따라 승부조작 사건이 터졌다.

 체육 행정 현장에서도 정부 주도의 쇄신이 필요하다고 공감하고 있다. 한 체육인은 “체육계의 여러 문제는 생각보다 고질적이고 뿌리가 깊다. 선후배 유대 의식이 단단해 외부에서 강한 자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재완 대한체육회 사무국장은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쉴 새 없이 문제가 생긴다. 체육계가 그동안 시대 변화에 둔감했다. 이번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민간의 자율성이 점점 중시되는 것과 달리 체육 행정에 대한 정부의 관리를 강화하는 게 효율적이냐는 지적이다. 대한체육회나 문체부가 해결하지 못한다고 또 다른 조직을 만드는 건 옥상옥이 될 수도 있다는 비판도 있다.

 체육계 내부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한 체육인은 “일부의 잘못 때문에 체육인 전체가 단체 기합을 받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에리사 의원은 “스포츠공정위는 설립 목적을 뚜렷하게 정해야 한다. 체육계를 좌우하는 방패막이로 만드는 게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직으로 만들어 체육계 전체의 신뢰를 얻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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