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재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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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5세기 때 북구의 기후가 한층 차가와 졌다. 이 때문에 「발틱」해에서 청어 떼가 없어졌다. 이 때문에 청어 잡이로 번영하던 독일의 상인층이 약화되었다.
이 때문에 봉건 세력이 오랫동안 활개펼 수 있었던 독일에서는 통일이 그처럼 늦어졌다. 이 때문에 규율과 질서, 그리고 통일을 상징하는 군국주의에 독일인들이 기울어지게 되고, 이 때문에 「히틀러」가 등장하게 되었다.
「로버트·클레어본」이란 지정 학자는 『기후·인간·역사』란 책에서 이렇게 「히틀러」 등장을 설명하였다.
이처럼 엄청난 풀이가 어느 정도 들어맞는지는 몰라도 기후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가령 영국의 하늘은 거의 1년 중 우는 상을 하고 있다. 그래서 맑은 태양을 담뿍 받고 사는 남구인과 단리 영국인들은 그처럼 음침한 외모를 갖게 되었다. 또 그래서 마음속에서나마 밝은 웃음을 찾으려고 독특한 「유머」의 정신을 키워냈다는 얘기도 있다.
이렇게 따져 나간다면 장마 역시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을 게 틀림없는 일인 것 같다.
장마는 아득히 먼 옛날부터 우리 나라에 있었다.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장마철만 되면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방안에 갇혀있게 된다.
강이 넘치고, 길이 막히고... 그래서 사람들은 일손을 멈추고 그저 하늘이 힐 매까지 걷힐 때가지 기다리고 있어야만 한다.
이래서 밖으로 발산할 길이 없는 사람들의 마음은 자연 안으로 스며들기 마련이다. 장마의 현상을 겪게되는 지역의 사람들이 다른 곳 사람들보다 인정과 감정에 흐르기 쉽고 눈물에 젖기 쉬운 생리를 갖게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뿐 아니라 장마가 찾아오는 철은 거의 정해져 있다. 아무리 심한 장마라도 언젠가는 걷히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그 동안만 잘 참아 나가면 되는 것이다. 이래서 정명론이 우리를 사로잡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고속도로가 달리는 한 곁에서 산사태로 18명이 떼죽음을 당했다. 장마철에는 있을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정명론에 너무 사로잡혀 혹은 미연에 방지할 수 있던 일에 손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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