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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기의 글로벌 포커스] 인도가 첫 먹잇감으로 걸려든 이유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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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호 20면

안타까운 광경이다. 인도가 악어 떼(국제 투기자본)에 둘러싸여 공격을 받고 있다. 뒷다리를 물려 피 흘리며 발버둥치는 모습이 안쓰럽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었던 한국이기에 남의 일로 보이지 않는다.
양적완화 축소의 도강(渡江)은 이미 시작됐다. 미국이 출발을 공언하지 않을 뿐 금리와 환율 등 시장 가격은 곧 닥칠 미래 상황에 맞춰 앞서 움직이고 있다. 1.6%대까지 떨어졌던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이 벌써 2.9% 선에 도달했다. 크게 보면 글로벌 경제의 정상화를 향한 진통이다.

예상한 대로다. 사냥감을 그냥 둘 악어 떼가 아니다. 표적은 일단 5개로 압축됐다. 인도와 인도네시아·브라질·터키·남아공이다. 취약한(Fragile) 5개국이라 해서 ‘F5’란 이름까지 붙었다. 투기꾼들은 작명의 명수이기도 하다. 먹잇감을 요리하기 전에 그럴듯하게 포장해 손님을 끈다. 브릭스(BRICS)다, 친디아(Chindia)다 하는 것도 매한가지였다. 신흥국 바람을 잔뜩 불어넣더니 이젠 “역시 선진국뿐”이라고 표변한다.

1년 전 직접 가 본 인도의 모습
어쩌다 인도가 첫 희생양이 된 것일까. 미안한 얘기지만 자초한 일이나 다름없다. 꼭 1년 전 인도에 가서 현지 경제를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인도에 대해선 좋은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12억의 인구 대국. 평균 연령 25세의 젊은 나라. 정보기술(IT)·인공위성·핵발전 등 첨단 기술 보유. 뛰어난 영어 구사력. 독재가 없는 민주주의 나라 등.’

일러스트 강일구

하지만 현지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희망을 얘기하기보다 걱정하는 소리가 훨씬 컸다. 부패와 관료주의, 규제, 포퓰리즘, 경상수지 적자, 국가부채 등에 대한 질타가 끊이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간 또 위기를 맞는다”는 주장이 신문 헤드라인을 자주 장식했다. 언론 자유가 완전 보장된 민주국가답게 논조가 매우 날카로웠다. 그러나 구조 개혁에 대해선 거의 자포자기하는 모습을 읽어볼 수 있었다.

인도 최대 재벌인 타타그룹의 한 임원은 “부패와 뇌물 관행이 언제쯤 사라질 것 같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 세대엔 어렵다”고 냉소적으로 답했다. 인도 히마찰프라데시 주정부의 한 관료는 “만모한 싱 총리가 개혁 타이밍을 놓쳤다. 다들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하다”고 탄식했다.

인도의 규제는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외국 업체가 커피숍이나 수퍼마켓을 하나 여는 데 몇 달씩 허가를 기다려야 한다. 민원인들이 드러누우면 아무 일도 안 된다. 한국 포스코의 현지 공장 설립이 대표적인 예다. 포스코는 2005년 인도 동부 오리사 주정부와 제철소 건립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120억 달러(약 13조원)를 투자해 광양제철소급 공장을 지어 2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하지만 환경 파괴를 주장하는 일부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의 반발에 부닥쳐 8년째 땅도 파지 못하고 있다. 더 이상한 것은 인도 정부와 공무원들의 태도다. 주민을 설득해 갈등을 풀 생각은 않고 수수방관할 따름이다.

부패와 규제가 기업가정신 죽여
인도에선 공무원을 움직이는 건 오로지 뇌물이란 얘기가 공공연하다. 뉴델리에서 사업을 하는 한 교포는 “투자액의 6~9%는 뇌물로 써야 비즈니스가 가능할 정도다. 공무원과 정치인들 사이엔 상납의 먹이사슬이 얽혀 있다”고 귀띔했다. 경제학자 조셉 슘페터가 경제 발전의 열쇠로 설파한 ‘창조적 파괴와 혁신, 기업가 정신’이 좀체 싹트기 힘든 환경이다. 그저 끼리끼리 해먹는 경제다.

인도 정부와 정치권은 부패를 숨기며 민심을 달래기 위해 각종 보조금과 복지 카드를 양산했다. 경유 연료에 대한 보조금만 한 해 2조 루피(약 40조원)에 달한다.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8%에 달하는 이유다. 이렇다 할 수출산업 없이 에너지 등을 흥청망청 수입해 쓰다 보니 경상수지 적자가 연간 800억 달러를 넘는다. 버블 경제 때 8~9%를 넘나들던 경제성장률은 4%대로 뚝 떨어졌다.

국제 투기자본으로선 군침이 돌 수밖에 없는 조건을 다 갖췄다. 큰 덩치에 살이 토실토실 올랐는데 체력은 가장 허약하다. 강을 무사히 건너게 내버려둘 리 없다.

브라질이나 인도네시아·남아공 등도 허약 체질이긴 마찬가지다. 부패 문제 등에선 차이가 있지만, 양적완화 시절 싼 금리의 해외 자금을 많이 끌어들여 모래성을 쌓았던 나라들이다. 인도 등이 국가 부도사태를 맞아 IMF까지 갈 확률은 여전히 낮아 보인다. 단기 외채 등과 비교한 외환보유액이 충분한 편이다. 하지만 물어 뜯기면서 다리 하나는 떼줘야 할 공산이 크다. 결국은 다 국민들이 떠안아야 할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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