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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1위 '인어아가씨' 주인공 장서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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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희는 분명 석 달 전 드라마를 처음 시작하던 때와는 달라져 있었다.사람이 바뀌었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파격적인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던 ‘인어 아가씨’의 헤로인 장서희를 만났다.

밥 사고 싶다는 제의도 거절한 '베일에 쌓인 작가'

데뷔 이후에 가장 화려한 날들을 보내는 즈음이다. 만년 조연 배우로 나이를 먹어가나 보다 씁쓸해지려던 찰나에 평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를 잡았다. 나름대로 조연의 설움도 겪었던 터라 지금의 기회가 더없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빡빡한 촬영 일정에 힘이 부쳐 가끔씩 힘들고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금세 마음을 다잡는다는 장서희. ‘이러면 안 되지, 옛날 생각해봐, 장서희 너 배 많이 불렀구나’, 속으로 중얼거린다.

“어제 스튜디오 녹화 마치고 밤늦게 스태프들과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서 회를 먹었어요. 거기 갔더니 아주머니들이 다들 ‘아유, 이제야 주인공을 하네. 너무 잘 보고 있어요. 힘내세요’ 라고 격려를 해주시더라구요. 요새는 어딜 가나 인사 받기 바빠요. 조연만 하다 처음 주인공 맡은 거 축하한다는. 선배님들도 여자 연기자가 서른 넘어서 자리 잡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면서 잘돼야 한다고 그러시구요.”

작년 여름,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정하고 드라마를 기획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주연으로 출연할 기회가 2~3번 있었지만 번번이 막판에 물을 먹었던 탓이다. 심지어는 촬영 도중에 잘린 경험도 있었다. 매니저 없이 일하던 그녀로서는 대형 매니지먼트사의 힘을 업고 활동하는 다른 연기자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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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자꾸만 좌절되는 상황에 스스로를 닦달하지는 않았다. “어쩌다 점을 봐도 나중에 성공할 운이라고 했어요. 꼭 그걸 믿었다기보다는 한 우물만 파다 보면 좋은 날도 오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한 거죠. 그래도 이건 너무 파격적이에요(웃음). 이렇게 반응이 빨리 올 줄은 몰랐거든요. 며칠 전에 방송의 날 기념으로 청와대 오찬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MBC 대표로 참석을 했었어요. 거기 오신 분들이 나를 보고 다들 아는 체를 하시는 거예요. 뭐랄까, 뿌듯하면서도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지는 거 있죠?”

그녀를 주인공으로 낙점한 사람은 ‘인어 아가씨’의 작가 임성한이다. 지난 98년 ‘보고 또 보고’란 일일 드라마로 희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유명 작가. 그녀가 장서희라는 배우를 눈여겨보기 시작한 것은 ‘보고 또 보고’ 이후에 자신이 집필한 일일극 ‘온달왕자’가 방영될 무렵부터였다.

그러다 주말 드라마 ‘그 여자네 집’에서 열연하는 그녀를 보고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장서희를 염두에 두고 시놉시스를 썼고, 작가와 제작진은 자신들의 의지를 마지막까지 관철시켰다.

“솔직히 불안했어요. 이러다가 또 잘못되는 건 아닌가…. 감사할 일이죠. 얼마나 매력적인 캐릭터예요. 대본 나올 때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지나 궁금해져요. 은아리영의 캐릭터가 작가 선생님과 굉장히 닮았다고 하더군요. 요리와 그림에도 재능이 있고, 취재를 위해서 이것저것 직접 해보는 스타일이시래요. 실제로 이야기를 오래 나눈 적은 없어요. 베일에 쌓인 분이죠. 함께 출연하는 김용림 선생님은 작가 얼굴 보는 게 소원이라고 하세요.”

’주왕’ 역할을 맡을 배우를 뽑는 오디션에서 딱 한 번 잠시 마주쳤다고 한다. 극중의 아리영처럼 앞뒤가 모두 긴 생머리였고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얼굴은 자세하게 보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을 천거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밥을 사겠다고 했다가 보기 좋게 거절을 당하고 말았다. 연기자는 연기만 잘하면 된다고, 밥은 먹은 셈 치겠다고 하더란다.

“배우들과 개인적으로 통화를 하거나 만나지는 않으세요. 대신에 대본에 헤어스타일까지 일일이 설정하시더라구요. 이를테면 ‘머리는 반 묶음 하세요’, 이렇게요. 드문드문 문자 메시지는 보내시죠. 잘 보고 있다구요. 통화는 어제 처음 했어요. 스태프들과 회식할 때 감독님이 전화 연결을 해주셨거든요. (김)성택씨랑 나랑 너무 궁금해하니까. 애 많이 쓴다구요, 딴 말씀은 없었어요.”

나이 서른에 되새기는 성공의 진정한 의미

돌이켜보면 김수현 드라마 ‘불꽃’이 그녀의 연기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주인공이었던 이영애의 방송작가 친구 역할. 비중은 미약했지만 연기의 맛을 알게 해준 드라마였다. 그녀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연기 영역을 작가가 개척해준 것이다.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이미지로 굳어진 자신에게서 중성적인 이미지가 나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불꽃’ 다음에 출연한 ‘온달왕자’에서도 결코 밋밋하지 않은 조연이었다. 주말 드라마 ‘그 여자네 집’도 마찬가지. ‘불꽃’에서 ‘온달왕자’ ‘그 여자네 집’을 거쳐 ‘인어 아가씨’까지 행운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 것이다. “작가복이 있어요, 제가. 김수현, 김정수(’그 여자네 집’ 작가), 임성한 선생님 모두 쟁쟁한 분들이시잖아요. 인연이 따로 있는 것 같아요.

‘불꽃’ 할 때 그 역할이 원래 나한테 왔다가 사정이 생겨서 다른 연기자한테 넘어갔어요. 그런데 대본 연습을 하고 나서 김수현 선생님이 성에 차지 않았는지 도로 장서희를 불러오라고 하셨대요. 그렇게 해서 하게 됐죠. 임성한 선생님과도 두 번이나 같이 하게 되고. 아무튼 나한테는 복이죠.”

기회가 된다면 스크린으로도 활동 영역을 넓히고 싶다. 예전에 간간이 조역으로 작업에 참여했던 몇몇 작품과 최근에 아이들이 주인공인 장길수 감독의 ‘초승달과 밤배’(11월 개봉 예정)라는 영화에 시골 학교 선생님으로 우정 출연한 것이 스크린 활동의 전부다.

‘인어 아가씨’가 끝나는 내년쯤에는 영화에 본격적으로 얼굴을 내밀려는 계획도 구상하고 있다. 그렇다고 ‘영화만 하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영화배우로 불러주세요’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안성기나 박중훈처럼 한 길을 꾸준하게 가는 배우라면 모를까, TV에서 이름을 얻은 많은 연기자들이 영화는 고상하고 드라마는 하찮다는 식의 배은망덕한 태도를 보이는 것에는 동의하지 못한다. 볼썽사납다. 드라마든 영화든 배우는 어디까지나 배우일 뿐인데….

“예전과 달라졌다는 소리를 듣는 게 가장 두려워요. 오랫동안 무명 배우로 살아온 선배님들한테도 더 깍듯하게 인사해요. 변한 게 있다면 나 자신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환경일 거예요. 스태프들이 나를 대우하는 수준도 전과는 다르고 옛날에는 모른 척 지나가던 나이 어린 스타들도 요새는 꼭 한마디씩 건네고 가더군요. 이런 때일수록 차분해져야죠. 들뜨지 않으려고 항상 정신을 가다듬고 있어요.”

자료제공:팟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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