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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과 비극의 뒤안길|펄·S·벅여사 신저 『케네디가의 여인들』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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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펄·S·벅여사가 최근 미국내의 케네디왕국으로 일컬어지는 케네디가의 영광과 비극을 측면에서 관찰, 논·픽션 『케네디가의 여인들』을 출판했다. 본사는 신간 케네디가의 여인들(The Kennedy Women)을 긴급입수, 그 내용을 간추려 여기에 소개한.<편집자>
『하늘은 우리가 짊어질 수 없을만큼 무거운 십자가는 지게하지 않는다.』-로즈·피츠제럴드·케네디.
이 세상에 어떤 어머니보다 높은 영광을 누린반면 어떤 어머니보다 더 많은 슬픔과 고통을 겪어야했던 로즈·피츠제럴드·케네디여사는 일생동안 끊임없이 그 주변을 맴돌았던 갖가지 유형의 비극들을 다만 하늘이 내린 무거운 십자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강한 여성은 약한 남성과 결혼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영국귀족 토머스·립튼경의 청혼을 뿌리치고 지체가 훨씬 낮은 조세프·패트릭·케네디와 결혼했던 것은 그 영광과 슬픔들의 전주였으며 그것들은 로즈여사의 강인한 정신력을 서서히 침식하기 시작했다.
결혼(1914년)서부터 대부분의 자녀들이 장성한 40년대 초기까지 맏딸 로즈메리의 정신박약증만 빼놓으면 매사가 순조로왔던 것 같지만 이 기간동안 로즈여사가 주부로서 보여준 강인한 정신력은 실상 케네디가의 비극을 위한 정지작업 같은 것이었다.

<립튼경 청혼 거절>
로즈여사가 9남매의 자식들 속에 뿌리깊이 심어준 것은 독립심·신앙심·인내심외에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고집이었다. 이것들은 신생 케네디왕국의 교훈이었다. 케네디가의 자녀들은 지나칠 정도로 이 교훈에 얽매였던 것 같다.
로즈메리의 정신박약증으로부터 케네디가를 넘보기 시작한 비극의 그림자는 43년 존(JFK)이 참전중 실종됨으로써 꽤 구체화하는 듯 싶었다.
이때 비극은 케네디가를 살짝 옆길로 피해 존은 살아 돌아왔지만 이로부터 불과 l년 남짓, 두개의 비극이 케네디가를 무섭게 엄습해왔다. 맏아들 조의 갑작스러운 전사, 그리고 이와 거의 때를 같이한 둘째 사위 하팅턴후작의 전사소식이었다.
로즈여사는 일찍부터 그의 남편이 정계에서 대성을 성취하기를 바랐고 그 실현이 어렵게 되자 모든 기대를 맏아들 조에게 걸고있었다. 그러나 조의 죽음에도 로즈여사는 슬픔을 내색하지 않았다. 스스로 말하는 바 『뭇사람앞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인간적으로 미숙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일까. 케네디가의 전통적인 다산은 이 경우 로즈여사를 꽤 위로했을 것이다.
그러나 조의 죽음으로 조에 대한 기대가 둘째아들 존에게 미뤄졌을 때 존이 이것을 탐탁히 생각지 않았던 것은 로즈여사를 꽤 낙담하게 했다.
결국 로즈여사의 집념은 계속적인 비극을 만들어낸다.

<조에 건 대성의 꿈>
둘째딸 캐더린의 죽음 역시 로즈여사의 고집때문에 외로와야 했다. 종교적인 문제때문에 민간의식으로 결혼했던 캐더린은 그 결혼을 인정하지 않은 로즈여사와 꽤 거리를 느껴야 했으며 남편 하팅턴후작이 죽은 다음에도 계속 영국에서 혼자 살다가 48년 아버지를 만나러 프랑스로 가던 길에 비행기사고로 외롭게 죽어갔던 것이다.
그러나 40년대 케네디가를 엄습한 일련의 비극을 디딘 둘째아들 존·피츠제럴드·케네디의 대통령당선은 역시 케네디가의 승리 이전에 로즈여사의 집념의 결정이었다. 그리고 아들 존, 아니 미국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억지로라도 태연해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셋째 아들 로버트와 넷째 아들 애드워드가 건재해있기 때문이다.

<비극을 딛고선 영광>
로즈여사가 로버트의 죽음까지도 하나의 시련으로 넘겨버릴 수 있었던 것은 재클린·부비에와 에델·스커클의 비극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로즈여사에게 케네디가 복수의 개념을 주는 반면 재클린이나 에델에게 있어서 케네디란 한개의 개념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클린·오나시스는 이미 재클린·케네디는 아니며 어떤 사람의 예언대로 에델이 2년안에 결혼하게 된다면 그 역시 에델·케네디는 아닌 것이다. 결과적인 얘기지만 재클린과 에델은 비극의 여주인공으로서는 꽤 공통점을 갖고 있다. 『시간이 낮과 밤을 만드는 것처럼 재클린은 그늘과 양지를 만든다』는 인도 현인의 얘기와 에델의 부모·오빠가 비행기사고로 죽고 곧이어 올케마저 질식사한 에델집안의 불행이 그렇다. 재클린은 실상 케네디가에 들어오기 전부터 가정적인 불행으로 우수에 차있었다.
부비에가는 1929년 재클린이 태어나면서부터 불운이 겹치기 시작하여 재산가이며 경제적 스폰서였던 재클린의 큰아버지가 죽더니 월·스트리트에 이변이 불어닥쳐 증권에 손대고 있던 재클린의 아버지 존·베른·부비에 3세를 망하게 했다. 재클린이 성장하면서 그의 어머니 자네트·리는 존과 이혼, 명문이며 거부인 오친클로스와 재혼하여 재클린의 마음은 항상 친부·친모·의부 세갈래로 갈라졌다.

<불운 겹친 부비에가>
로즈여사가 조세프와 결혼하지 않았던들 그 여러 가지 비극들을 피할 수 있었으리라는 논리는 재클린의 경우에 더욱 실감을 준다. 재클린은 존과 알게되기에 앞서 뉴요크 은행가의 아들인 유망하고 핸섬한 청년과 약혼했었으며 로즈여사의 경우처럼 존과의 결혼도 그의 아버지를 낙담시켰다.
재클린이 이미 오나시스가의 한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케네디가와 전혀 무관할 수 없는 것은 캐럴라인과 존 때문이다.
죽은 둘째딸 캐더린, 그리고 며느리 재클린, 에델의 그늘에서 세째딸 유니스, 네째딸 패트리셔, 다섯째딸 진은 각기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패트리셔가 영국배우 피터·로포트와 결혼, 11년만에 파경을 기록한 외에 유니스나 진은 슈라이버(평화봉사단장)와 스미드(사업가)를 남편으로 건강한 생활을 즐긴다.
결국 강력한 케네디-독트린이 이 시대에 재현되느냐, 안되느냐의 문제는 막내아들 에드워드에 달려있으며 다음 세대에의 그 가능성은 에델에 달려있는 것이다. [정규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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