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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25 20주 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가장 길었던 3일(31)|작전지도의 혼돈(2)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26일 심야의 비상국무회의에서 수도천도를 의결하고나온 신성모국방장관은 27일새벽 5시쯤 국방수뇌부회의를 긴급소집했다. 신장관이 주재한 이 회의에는 장경근국방차관, 손성겸국방부제1국장, 이선근제2국장, 김일환제3국장, 채병덕참모총장, 김백일작전참모부장, 김영철해군참모총장대리(손원일총장은 도미중), 김정렬공군참모총장, 장창국작전국장, 강영훈인사국장, 양국진군수국장, 강문봉대령등이 참석했다.

<주력상실하면 게릴라전도>
그런데 이보다 앞서 채참모총장은 27일상오 2시쯤 해·공 참모총장등과 회합하여 미군의 직접 지원이없는한 사태는 절망이라고 판단하고 대책을 숙의한 끝에 ①육군은 주력부대 상실후에도 게릴라전으로 끝까지 항전하며 ②해·공군은 육군작전에 협조하되 최후단계에 가서는 망명정부요인의 수송을 담당한다는 원칙을 결정했다.
이 회의에서 채총장은 미공군기의 한국군지원도 실은 알고본즉 미거류민철수를 엄호하기위한 것이며, 이때까지 미국으로부터는 10일분의 탄약원조 약속밖에 없었다고 실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29 백대 내원은 취소되지않고 그대로 27일낮에 창동저지선에 있는 전방부대에 전달되었다.(주=본연재 제30화 참조).
이제 이야기는 다시 국방수뇌회의로 돌아가서….
신장관은 비서실장 신동우중령을 시켜 각자 글라스에 위스키를 한잔씩 따르게했다. 이 회의 분위기와 내막은 그 회의에 참석했던 두 증인의 말을 들어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강영훈씨(당시육본인사국장·예비역육군중장·현남가주대학에서연구생활·49·일시귀국했을때회견) 『시간은 아침 6시쯤이라고 생각되는데 먼저 신장관이 일어나서 아주 비통한 연설을 했어요. 내용은 결국 전세가 불리해서 서울을 버릴 수 밖에 없으며 미공군이 철수작전을 지원할 거라는 겁니다. 그리고는 2차대전때 런던에 있던 폴란드 망명정부의 예를 들어요. 그래서 나는 정부가 제주도로 피난가나 생각했읍니다.
어쨌든 그때에는 신장관 말의 진의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랐어요. 한가지 분명한 것은 서울을 포기하는구나 하는 것이었지요.

<정부 떠나도 군은 싸우라>
장관이 눈물을 흐리면서 그런 말을 하기에 모두가 비감한 생각에 젖었습니다. 이때 갑자기 이선근정훈국장이 책상을 탕치면서 일어났어요. 모두가 깜짝 놀랐지요. 이국장은 "장관 앉으십시오. 내가 한마디 해야되겠읍니다."라고 말하면서 연설을 시작했어요. 이국장은 철수하느니보다 백만학도를 동원해서 서울을 사수하자, 시민들을 두고 그냥 갈 수 없다고 역설하더군요. 이국장 말을 듣고 퍽 감격했읍니다.』
이때의 광경을 이선근국장 자신은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내가 책임자로 있는 정훈국을 통해서 국민에게 서울을 사수한다, 의정부를 탈환했다, B-29가 온다 등등, 온갖 발표를 해놓고는 이제는 서울을 버린다니 말이 돼요? 시가전도 한번 안해보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말이 길었던 것 같아요.
임진왜란때 일본군이 북상할 무렵 선조가 서둘러 피난하려 했기때문에 서울 민심이 흩어진 이야기며, 프랑스의 캄배터장군이 프러시아군의 중압을 받으며 백일간의 파리농성을 치른 예등을 들어 수도를 지켜야한다고 주장했지요. 대부분의 참모들이 내 말에 동조하는 빛이었지만 누군간 "무슨 말이 그리길어요"하고 역정을 내요. 그래서 나는 채장군을 보고 이제 결정권은 참모총장에게 있다고 말했지요.
채총장은 "정부는 수원으로 가지만 군은 더 버티기로하자"는 결론을 내리고 회의는 끝났어요』

<열변도 못말린 서울철수>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이 회의를 지켜보았던 국방장관 비서실장 신동우중령(현경향신문전무)은 『정훈국장의 눈물어린 열변에 모두가 감동된 것은 사실이지만 군의 수도포기결정은 현실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강영훈인사국장도 『이 국방수뇌회의에서 비통하고도 감격적인 애국충정의 이야기가 오고갔지만, 육군본부를 시흥으로 「축차철수」하기로 한 결정을 변경하지는 않겠다.』고 말하고있다.
그러나 채총창은 실제로 육본철수를 시작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가지 손을 썼다. 즉 육본장교를 창동방면 전선으로 파견하여 앞으로 전방이 얼마동안 지탱할 수 있는가를 확인케 한 것이다. 이 큐어리어의 중임은 육본정보국의 김종필중위(전공화당의장·45)가 맡았다.
『27일상오 11시쯤 참모총장이 부르기에 갔더니, 밀봉한 편지를 한장 내주면서 유재흥준장에게 갖다주고 회답을 직접 받아가지고 오라는 겁니다. 내가 총장에게 편지내용을 알 수 없느냐고 물은 즉 별게아니고 앞으로 전선을 얼마나 지탱할 수 있느냐는 것이라고 대답해요. 지프를 타고 창동을향해 수유리를 지나는데 앞에서 요란한 총성과 함께 아군이 무질서하게 후퇴를 해와요

<김종필중위 비관적보고>
헌병들이 권총을 빼들고 막으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어요. 그런데 유재흥준장의 지휘소를 찾을 수가 있어야지요. 할 수 없이 정릉어귀까지 되돌아오는 길에 이용문대령(참모학교부교장으로 있다가 전방지휘자 나갔음. 공중사고로 순직)을 만나서 사유를 이야기했더니, 이런 상태면 27일밤을 넘기기가 힘들다는 의견이에요. 그대로 육본에와서 채총장에게 복명했더니, 몹시 실망하더군요』
채총장은 김종필중위의 보고를 들은다음 육본 참모들과 재경단위부대장 회의를 소집하고 이미 마련해놓은 군의 서울철수령을 하달했다. 육본은 시흥보병학교에, 그리고 해·공군본부는 수원으로 각각 철수하도록 결정했다. 이때 서울 북방이나 문산남쪽의 아군 잔존부대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또한 채총장은 정훈국방에게 군의 서울철수는 엄비에 붙이도록했다.

<육본철수를 엄비에 붙여>
육본을 비롯한 군의 서울철수는 27일하오 1시반께부터 시작되었다. 장사의 군차량 종대가 남으로 향하는 것을 본 시민들은 공식발표가 없었지만 사태가 절망적임을 눈치챘다.
육본지휘부가 서울을 철수할때 범한 두드러진 과오로서는 미아리와 문산남방에서 후퇴하는 부대에대해 수습책을 마련하지 못한 것과 함께 그때까지 남아있던 30여명의 미군사고문단(KMAG) 기간요원들에게 한마디 통고도 하지않았다는 점을 들수 있겠다. 이것은 28일새벽 한강다리를 끊고 다시 후퇴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동안 적침 징조에 대한 누차의 경고를 KMAG이 묵살한 것이라든지 사태를 이지경으로 만들어 놓고도 자기 거류민 철수에만 급급하고 속히 내원하지않은데 대한 불만이 한국 고급장교들 사이에 누적돼 있었다는 것은 십분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감정이지 이성적인 행동은 못된다. 결국 이런 일들이 서로를 자극해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적침초 며칠동안 한·미군관계가 서먹서먹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이 문제는 로버트·K·소어소령 저 『주한미군사고문단』(KMAG in Peace and War)에 단편적으로 기록돼있다.


『27일 하오에 한국의 전육군본부는 미군사고문단과는 일언반구의 상의나 통고도 없이 시흥으로 이동했다. 미군사고문들은 한국군 참모들이 몹시 흥분하고 있는 것을 알았지만 실제로 그들이 육본을 떠나기 시작할 때까지 왜 그러는지 전혀 눈치채지를 못했다. 그제서야 한국 육본의 의도를 안 KMAG단장 대리인 라이트대령은 부랴부랴 부하들을 집합해서 육본의 서울복귀를 설득하려고 남으로 향했다. 육본의 철수로 서울 북쪽에서 싸우고있던 한국군은 본부와의 연락이 끊어졌고 시민들은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KMAG차량이 한강을 건넌직후 라이트대령은 한국군을 지원하기위한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맥아더원수는 KMAG 차량대열에 끼어있던 무천차를 통해 미합참본부에서 자기에게 KMAG을 포함한 모든 주한미군의 작전권을 부여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는 나중에 맥아더 전방 지휘소(ADCOM)라고 불린 군사팀을 파견중이라는 것도 알려왔다.

<맥원수, 기운내라고 무전>
시흥에서 라이트대령은 맥아더로부터 두번째의 무전메시지를 받았다. 중대결정이 박두했으니 기운을 내라는 내용이었다. 라이트대령은 맥아더의 메시지를 보고 KMAG은 이제 한국에 남아있어야 한다고 판단, 수원에서 아직 일본 철수를 기다리고 있는 잔류 고문단을 도로 불러오게했다.
30여명의 미군사고문들은 라이트대령과 함께 서울로 되돌아왔다. 한국 육본도 시흥에서 서울로 복귀했다. 이래서 27일하오 6시까지 한국 육본과 KMAG은 한강이북에 다시 자리잡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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