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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혼 신드롬 실력인가, 거품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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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한국적 재발견인가, 과대 포장인가.

 뮤지컬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Frank Wildhorn·55). 미국 출신의 그가 2013년 한국 뮤지컬판을 호령하고 있다. 올 초 오스트리아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로 첫 테이프를 끊은 뒤 대서사극 ‘몬테크리스토’가 뒤를 이었고, 코믹 히어로 ‘스칼렛 핌퍼넬’이 한여름을 달구었다.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로 유명한 ‘보니 앤 클라이드’가 9월 개막을 앞두고 있으며 연말엔 ‘카르멘’도 예고돼 있다. 일년간 무려 다섯 편이다. 이중 신작이 네 편이다. <표 참조>

 가히 ‘와일드혼 신드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명이 작곡한 뮤지컬이 한 해 다섯 편 올라가는 건, 대한민국에서 와일드혼의 파워를 입증하는 전무후무한 사건”(BOM코리아 최용석 대표)이란 평가다.

한 해 다섯 작품 동시에 막 올라

 와일드혼의 대표작은 ‘지킬앤하이드’다. 특히 삽입곡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은 미식축구 슈퍼볼 등 미국 내 주요 행사에 자주 쓰이며 뮤지컬 장르를 대표하는 노래로 자리잡았고, 와일드혼의 지명도도 높아졌다.

 그의 강점은 캐릭터다. 노래만 들어도 자연스레 인물이 머리에 그려진다. 선율이 풍성하고 개성이 강해 뮤지컬 음악으로 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련하고 격정적이면서도 듣기 편한 것도 장점이다. 음악적 기반은 클래식이 아닌, 팝음악에서 출발했다.(와일드혼은 1980년대 휘트니 휴스턴과 케니 로저스에게 곡을 준 팝 작곡가였다) 그러면서도 결정적 순간 한방을 날린다. 찢어질듯한 고음과 함께 가슴을 뻥 뚫어준다. 극장을 나올 때면 귀에 맴도는 노래 한 곡은 꼭 남기는 것도 전매특허다. 중독성이 강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강한 중독성 … 평단 시선은 싸늘

프랭크 와일드혼의 신작 ‘보니 앤 클라이드’. 한지상·엄기준 등이 출연한다. [사진 CJ E&M]

 “브로드웨이에서 활동 중인 미국 출신 작곡가중 가장 다작을 하는 이는 와일드혼이다. 또한 가장 빨리 막을 내리는 이도 와일드혼이다.”

 그에 대한 미국 내 평가다. 와일드혼은 특별한 수상 경력이 없다. 토니상도, 그래미상도 받지 못했다.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지도 못했다. 가장 성공했다는 ‘지킬앤하이드’가 브로드웨이에서 1997년 개막해 3년 반 공연했다. 대박이라기보다, 손해는 안 본 평범한 흥행 성적이다.

 오히려 ‘지킬앤하이드’는 국내에서 더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나머지는 더 초라하다. 드문드문 공연했던 ‘스칼렛 핌퍼넬’은 다 합해봐야 브로드웨이 1년을 간신히 넘기며, ‘보니 앤 클라이드’는 한 달 만에 막을 내렸다. “음악적 깊이가 얕고 자기 복제를 하는 듯, 선율이 엇비슷하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변용 쉬워 한국과 궁합 맞는 듯

 한국에서 늘 성공했던 것도 아니다. 2011년 와일드혼의 신작이 국내에서 제작됐다. 조성모의 뮤직비디오 ‘아시나요’를 모티브로 한 ‘천국의 눈물’이었다. 실패였다.

 그런데 왜 지금 새삼 와일드혼일까. “2013년 뮤지컬 투자의 제1 덕목이 안전성”이라는 분석이다. 2000년대 이후 수백 편의 해외 뮤지컬이 이미 한국을 거쳐 갔다. 하지만 살아남은 건 10편 안팎이다. 위험 요소를 최대한 낮춰 검증된 작품을 찾으려는 국내 제작자의 요구에 와일드혼이 정확히 부합했다는 얘기다.

 해외에선 크게 히트하지 못했어도, 한국에선 ‘지킬앤하이드’로 어느 정도 유명세를 갖고 있고, 또한 기본적인 완성도를 갖춘 게 와일드혼 아니던가. 그러기에 그의 초기작(스칼렛 핌퍼넬)은 물론 유럽과의 합작(황태자 루돌프·몬테크리스토·카르멘)까지 찾아내 앞다투어 수입하게 됐다. 또한 원작을 100% 그대로 하지 않고 개작의 가능성을 열어 둔 것도 한국 제작 현실과 맞아 떨어졌다.

 현재까지 결과는? 좋은 편이다. ‘몬테크리스토’는 레퍼토리 작품이 됐고, ‘황태자 루돌프’와 ‘스칼렛 핌퍼넬’도 수익을 내고 있다. 뮤지컬평론가 원종원씨는 “와일드혼의 드라마틱한 선율을 한국 관객이 좋아한다는 이유 이외에 한국적 변용이 용이하다는 점도 와일드혼 인기의 숨은 비밀”이라고 풀이했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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