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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거센 민족주의 열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전화의 인지제국을 누비면서 가장 실감있게 느낀 것은 이 모든 나라들을 휩쓸고있는 민족주의의 열도였다. 그것은 지금까지 책에서나 읽어오던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와는 확실히 그 실감이 다른 것이다. 그야말로 물씬한 흙내와 피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원시감정 그대로의 생명력이었다고나 할까‥.
캄보디아의 월남 및 중국인에 대한 뿌리깊은 적대감정에 대해서는 앞서도 적은 바 있거니와, 유사이래 북방의 강대국 중국과 가까이는 크메르 대제 지배하의 캄보디아 민족에 의한 지배(13세기), 그리고 더 최근의 일로는 프랑스 식민통치자들에 의한 무자비한 통치밑에서 장구한 세월을 두고 길러온 월남 국민의 민족주의적 감정의 열도를 체험했을 때, 그들에게 아무리 호의를 베풀기위해 이 나라에 왔던 사람이라도 처음에는 큰 낭패감을 금치 못할 것이다.
주월 한국군이나 한국인 기술자등에 대하여 근래 월남국민의 일부층이 눈에 뛸 만큼 냉랭한 태도를 취하고있다는 보도는 국내에서도 흔히 듣던 일이다. 그렇지만 현지에서 그것을 직접 체험하였을 때, 필자는 일종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반면, 한편으론 우리가 6·25 동란을 겪는 과정에서 그랬듯이, 그들 월남 국민도 이제 그 지긋지긋한 전화속에서나마 자신의 힘에 대한 자각과 자신을 얻어가고 있다는 실증을 목도한 것으로 생각한다.
사실, 자기들의 어려울 때를 당하여 피를 흘려가면서 그들의 자유와 생명·재산을 지켜주었을 뿐 아니라, 싸움을 하러온 전투부대들이 그 용력의 적지않은 부분을 떼어 그들을 위한 이른바 대민사업에 바쳐, 길닦고 집 지어주며 병 고쳐주고…하는 일에 바친 주월 한국군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불손스런 태도를 취하는 월남 국민이 있다면 이는 망은패덕의 짓이라고 화를 낼만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할 때, 그와같은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시하는 월남 국민이란 실상 월남국민가운데서도 무분별한 사고와 행동을하는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고, 또 민족주의적 감정이란 원래가 이성으로써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기에 굳이 깊이 개의할 필요조차없는 일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앞서도 지적한대로 우리 국군이 파월이래 5년간 수행해 나온 갖가지 업적의 성격을 국가적인 안목에서 분석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제 어차피 파장에 가까와 오는 월남전국의 갈림길에서, 점점 더 거센 민족주의의 열풍이 휘몰아치고있는 이들 인지제국에 우리의 장기적인 국가이익을 심는 길이 과연 무엇인지를 다시금 깊이깊이 생각해두어야 한다고 느껴졌다.
국군파월을 결정할 당시, 분분한 찬반양론이 대립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주월국군이 우리의 국가이익을 위해서 얼마나 큰 공헌을 했는가에 대하여 의심을 품는 사람은 없다. 순전히 군사적인 면에서만 보더라도 월남전선에서의 귀중한 실전체험은 그것이 직접 국가안보의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할 것이며, 좀더 작은 일로는 파월국군이 국내 우군의 장비 개선에 이룩한 공헌만도 눈물겨운 바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피·땀흘려 받은 봉급중의 상당 부분과, 또 주월군의 후광을 얻어 진출한 기업과 수만 한국인 기술자들이 보내오는 외화송금등도 우리 경제의 발전에 적지않은 기여를 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밖에도 주월군의 혁혁한 전과를 통해 국위를 선양하고, 우방국에 대해서 경우에 따라서는 외교적 발언권을 유보하게된 사실도 특기할 만한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국군이 파월이래 성취한 업적중에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것은 우리 국군이 월남전선을 지키는 가운데 정신적으로 매우 성장했다는 사실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것은 여러 우방국가 군대들과의 협동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터득한 국제적 레벨에서의 용병기술의 향상을 가져왔다는 점에서도 그렇거니와, 특히 파월국군은 그 임무의 특수성때문에 그 편제에서부터 국내 부대들과는 달리, 현지 주민들의 『가슴과 마음을 얻기위한』 심리전 체제를 갖추면서 매우 정치적으로 세련된 군대로 성숙했다는 점을 들어야 할 것이다.
군의 정치적 성숙이란 보기에따라서는 서로 양극적인 평가를 내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 국군이 민중의 가슴과 마음을 얻기위한 전쟁에서의 승리의 기록을 가졌다는 것은 우리 국가자체의 장래를 위해서도 건설적인 힘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캄사태의 긴박성에 비추어 만의 하나라도 주월국군의 개입이 요청된다고 할때 그것은 아마도 군사고문단의 파견정도 이상의 것은 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던 어느 고급막료의 말을 필자는 이렇게 해석하면서 사이공을 떠났던 것이다. <끝> [김승한 본사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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