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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법원의 '재판연구원 챙기기'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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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

“법원에서 재판연구원 취업 자리까지 봐준다니 상실감마저 듭니다.”

 올 2월 로스쿨을 졸업한 뒤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김모(30·변호사)씨의 얘기다. 법원이 2014년 2월 계약을 마치는 재판연구원(law clerk·로클러크)을 위해 김앤장·태평양·광장·세종·율촌 등 국내 10대 로펌 인사담당자를 초청해 취업간담회를 열려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 “부적절한 취업 알선 행위”라며 반발하자 취소했다는 보도를 접하고서다.

 로스쿨생 6200여 명이 가입한 인터넷 카페 ‘로이너스’도 들끓었다. ‘법원이 재판연구원을 위해 후관예우(전관예우의 반대말로 법원이 향후 재판연구원의 법관 임용을 염두에 두고 예우한다는 뜻)에 나섰다’는 내용의 글은 1000여 명이 조회했다. ‘금감원에서 퇴직자를 위해 은행 인사담당자를 모아 취업설명회를 여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법원 식구는 법원이 챙겨주는 게 당연하다는 마인드가 문제’란 내용의 댓글도 수십 개 달렸다.

 법원의 해명은 궁색했다. 사건을 보도하자 법원행정처는 “로펌에서 재판연구원이 무슨 일을 했고, 어떤 능력을 갖췄는지 궁금해 해 간담회를 열려고 했다”는 해명서를 냈다. 하지만 로스쿨 재학생 박모(28)씨는 “가뜩이나 취업난 때문에 민감한데 갑(甲)인 법원이 나서 을(乙)인 로펌에 ‘재판연구원들은 이렇게 열심히 일한다’고 소개한다면 취업 알선과 다를 게 뭐냐”고 꼬집었다.

 법원은 2009년 로스쿨 도입 후 우수 인재가 로펌·검찰로 몰리자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7년엔 사법시험도 폐지된다. 그런 상황에서 법원이 재판연구원부터 챙긴다면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 법조일원화(판사·검사·변호사 간 벽을 허물고 필요한 인력을 선발하는 것) 추세에도 어긋난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법원이 재판연구원을 마친 대형 로펌 출신 변호사를 법관으로 채용하고, 로펌은 나중에 소속 변호사를 법관으로 보낼 수 있다면 신(新)전관예우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로스쿨 1기 출신 100명의 재판연구원은 서울고법 재판부에서 밤낮으로 일하고 있다. 여름 휴가를 반납한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도 공정하게 취업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재판연구원에게 부당한 대우를 해도 안 되지만, 법원이 앞장서서 취업을 도와줄 필요도 없다. 법원이 10대 로펌만 대상으로 꼽은 것도 부적절하다. 자칫하면 재판연구원→대형 로펌→법관 임용이 법조계 내 새로운 성골(聖骨) 코스로 고착될 우려가 있다. 최소한 중소 로펌과 다른 기관까지 참여하는 ‘재판연구원 취업박람회’를 여는 식으로 공정성 시비 소지를 줄였어야 했다.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