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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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윤 대비는 열 세살 때에 시집온 후 거의 일생을 창덕궁에서 지냈다.
6·25동란 때에 운현궁으로 나갔던 것과 1·4후퇴 때에 구포로 피난했던 것을 빼놓고는 창덕궁 안에서 밖에 나온 일이 없으니, 춘풍추우 50여년을 궁중에서만 보낸 셈이다. 그러므로 윤 대비가 상대하는 사람이라고는 몇 사람 안 되는 근친과 나이 많은 상궁들뿐이었으므로 자연 세상 물정에 어두울 것은 정한 이치인데, 필자는 뜻밖에도 우연한 기회에 윤 대비는 결코 평범한 부녀자가 아니요, 국모로서도 역시 훌륭한 황후라는 것을 발견하고 혼자서 탄복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1947년 미군정 때의 일이었다. 우리 나라의 청년회(YMCA)사업을 도우려고 미국으로부터 조지·A·피치(George A. Fitch)라는 노 박사가 왔다. 그는 다년간 중국에서 활약했으며, 상해에 있을 때에는 물심양면으로 우리 임시정부를 원조해서 한국독립의 숨은 공로자라는 말을 듣는 고마운 사람이다. 더우기 그 부인 제럴딘·피치여사는 재화가 놀라와서 저널리스트로도 유명하며 미국의 주간잡지 뉴·리더의 기고가이기도하다. 그런데 하루는 청년회 총무 현동완씨가 나를 찾아와서 이런 말을 하였다.
『피치박사와 그 부인의 특청인데 창덕궁의 윤 대비를 찾아 뵈옵겠다고 하니 어떻게 허가를 얻어 줄 수는 없겠소?』당시는 해방직후 미군정 때이므로, 전에 있던 이왕직은 이미 없어지고 그 대신 이달용·이규용·이연용·김익동씨 등의 종친들이 관리위원회를 만들어서 구 왕궁을 지켜가고 있는 때였다. 위원들은 모두 내가 잘 아는 사람이므로 문제가 없지만, 과연 윤 대비가 외간 남자를, 그것도 외국인을 만나 줄는지가 의문이었다. 따라서 자신은 없었지만, 피치박사가 모처럼 말하는 특청이므로 하여간 힘은 써 보마고 하였다. 그 이튿날 창덕궁으로 가서 위원들에게 교섭을 하니 과연 난색을 표시했다.
첫째는 윤 대비가 서양남자를 만나본 일이 없다는 것이요, 둘째는 대비가 거처하는 낙선재는 협착할 뿐더러 외국사람을 접견할만한 설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그들이 반대하는 이유였다. 그래서 나는 입이 닳도록 피치박사는 보통 다른 미국 사람과는 다르다는 것을 역설하였더니『그렇다면 실례가 되지 않도록 예복을 입고 너무 어려운 질문은 하지 말라』는 조건으로 겨우 승낙을 해주었다. 약속한 날이 와서 예장을 갖춘 피치박사부처를 안내해 창덕궁으로 들어가 낙선재에 이르니 위원장이하 여러 위원들이 벌써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응접실에서 잠깐 쉬었다가 접견실로 들어가니, 정면 의자 위에는 윤 황후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 좌우 쪽에는 십여명의 상궁들이 시립하고 있는 가운데피치박사 부처는 천천히 걸어서 왕비 앞으로 가더니, 영국의 궁중의식 그대로 한 무릎을 꿇고는 경건하게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나서는 『구한국의 황후폐하께 삼가 문안을 드립니다』라고 정중한 인사의 말씀을 올렸다. 통역은 현동완씨가 했는데 그 말이 떨어지자, 윤 황후는 거침없이 『내가 들으니, 피치박사부처는 상해임시정부를 도와서 우리 나라 독립운동에 많은 공로가 있다고 하니 대단히 감사하오. 바라건대 장래에도 한-미 양국의 친선을 위해서 많이 힘써주오.』
황후의 치사로는 조금도 나무랄 데가 없는 훌륭한 것이었다. 이윽고 피치박사 부처는 황후께 작별인사를 여쭙고 물러 나오는데 황후에게 등뒤를 보이지 않으려고 마치 영국의 나이트(기사) 가 빅토리아 여황 앞에서 하듯이 얼굴은 정면을 향한 채 천천히 뒷걸음질을 쳐서 걸어나오는 것이 참으로 장관이었다. 나는 아무 실권도 없는 구한국 왕실에 대해서 그처럼 최고의 경의를 표해준 피치박사에 대해서 더욱 감명을 깊이 하였다. 응접실로 나와서 관리위원장을 보고 윤 대비께 미리 말씀하실 것을 가르쳐 드렸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전혀 그런 일이 없다고 하면서 『황후가 되는 분은 역시 다르다』고 혀를 내두르는 것이었다.
그후 피치박사가 윤 대비를 자기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했으나 그것은 실현되지 못하였고, 그후 미국에서 온 뉴·리더 지에는 제럴딘·피치부인이 서명한 다음과 같은 특별기사가 게재되어 있었다.
『구한국 최후의 황후 윤 대비 회견기=지금은 아무 실권도 없이 다만 창덕궁 안 낙선재에서 고요하게 여생을 보내고 있지만, 윤 대비는 과연 기품이 있고, 인자하고, 그리고 총명한 황후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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