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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참사] "잘 가렴" 잿빛현장 수놓은 국화물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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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뱃속의 아이는 어떡하라고 이렇게 가능교…."

20일 오전 대구시 동구 대림동 대구 지하철공사 안심기지창 관리동 앞.

대구지하철 대참사 현장에서 승객들을 대피시키다 목숨을 잃은 대구지하철공사 직원 장대성(34.안심기지창)씨의 노제가 열렸다.

장씨는 화재발생 직후 사고가 난 중앙로 역 상황실로부터 "화재가 났으니 출동하라"는 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달려가 승객 여러명을 대피시켰으나 정작 자신은 사고 현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임신 3개월인 부인 정현조(35)씨는 노제 내내 오열했고, 세살배기 딸 은지양도 영문도 모른 채 칭얼거려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이날 오전 대구 가야기독병원에서 열린 김창제(68)씨의 영결식.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金씨는 교회에 가던 중 변을 당했다. 金씨는 부인 석모(66)씨에게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불이 났어. 나 먼저 하늘나라로 간다"는 말을 남겼다고 했다.

대구시내 각 병원에선 이날 영안실에 안치된 사망자 54명 중 9명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특히 대구지하철공사 직원으로 근무하다 순직한 4명 중 2명의 노제가 치러진 안심기지창 관리동 앞은 유가족과 친지, 직장 동료 등 2백여명이 모여 희생자의 넋을 위로했다.

한편 사고현장인 중앙로역엔 시민들의 추모 발걸음이 하루종일 이어졌고, 합동분향소가 설치된 대구시민회관 별관 2층에도 시민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은영아! 지금 지하철에 있는 것 아니제? 돌아온나. 기다리는 사람 많다…."

"국화꽃 한송이 놓고 갈 뿐이네요. 국화꽃에 영혼 담아 천국으로 가시길…."

지하철 계단 입구와 환기구는 시민들이 바친 국화와 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편지로 뒤덮였고, 군데군데 촛불도 켜졌다.

아빠 손을 잡고 이곳을 찾은 백승아(8.대구 월성초교)양은 묵념한 뒤 "너무 슬프고 무섭다"며 울먹였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꽃을 샀다는 차지선(20.경북 경산시 옥산동)씨는 "꽃밖에 드릴 수 없어 죄송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전국 각지에서도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와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서울에선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등 18개 단체로 구성된 재해극복범시민연합(집행위원장 고진광)이 20일 오전 동숭동 마로니에공원에서 1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추모식을 가졌다.

부산시.광주시.경기도.조선대.㈜POSCO 등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대학.기업들이 참배를 하고 성금을 전달했고, 미국 애틀랜타시와 일본 히로시마시, 러시아 프로브디프시, 중국의 선양(瀋陽)시 등 해외에선 애도의 서신을 보내왔다.

인터넷에도 추모의 글이 쇄도했다.

대구시 홈페이지의 '사이버 추모 게시판'엔 수천건의 추모 글과 사연들이 올랐다. 인터넷 사이트 '다음'엔 고인들의 명복을 비는 수십개의 추모 카페가 생겨 네티즌들의 글이 이어지고 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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