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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시 - 이현승 '벼룩시장'외 13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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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현승 시인은 “나이가 들수록 불안에 더 예민해지는 듯하다”고 했다. 요즘 그가 고민하는 것은 ‘왜 우리는 이렇게 화가 나 있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스쳐가는 시선은 평면적이다. 사물의 한 면밖에 볼 수 없다. 반면 꿰뚫는 시선은 사물의 이면에 다가설 수 있다. 세상의 양면적 속성을 감지해낼 수 있다. 이현승(40)의 시에 삶의 아이러니가 포진한 이유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지독하게 생각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에요. 과작(寡作)인 것도 그래서고요. 있는 그대로 보면서 본질을 향해 가는 근본주의자에 가깝죠. 아이러니의 자리는 주객이 전도되는 지점이에요. 희비극이 발생하는 자리죠. 슬픈 듯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이유에요.”

 자칭 ‘근본주의자’인 그의 시는 “사물의 시이면서 마음의 시의 한 극치를 이룬다”는 평을 들었다. ‘2012년 동료들이 뽑은 올해의 젊은 시인상’ 수상자로 선정될 때다. “눈으로 사물을 한 번, 마음으로 또 한번, 손으로 그 마음을 옮기면서 또 한 번. 이 세계를 마주함에 있어 이런 성실함은 분명 미덕이라 할 만하다”는 평을 받았다.

 성실하고 진지하게, 혹은 집요하게 사물과 마주하는 그의 눈은 날카롭고 매섭다.

 ‘밤의 도시를 바라볼 때처럼 명확해질 때는 없다/어두운 천지에 저마다 연등을 달아놓듯/빛나는 자리마다 욕정이, 질투가, 허기가 있다/이것보다 명확한 것이 있는가//십자가가 저렇게 많은데/우리에게 없는 것은 기도가 아닌가//…(중략)…//구할 수 없는 것만을 기도하듯/간절함의 세목 또한 매번 불가능의 목록이다.’(‘빗방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중)

 후줄근한 일상, 서글픈 생활인의 자화상도 놓치지 않는다.

 ‘퇴근길에 그대로 가라앉아 버리는 사람들도 있고/이 골목을 소금쟁이처럼 지나간 사람도 있다/하지만 어떤 경우든 삯이 있어야 한다/이 수수께끼 같은 삶을 무슨 댓가를 지불하며 건너고 있는건지/가야할 길은 멀고 남은 시간이 없다고 생각될 때의 목마름//퇴근 길에 보는 어둠은 거대한 짐승의 아가리 같다/내가 들어갈 그 아가리를 보다가 나는 잠시 구멍이다.’(‘씽크 홀’ 중)

 예심위원인 문학평론가 강계숙은 “이현승의 시에는 생활인의 비루함이 감각적 언어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다. 그런 것들이 한층 더 깊어진 시의 형태로 결합한다. 재미와 유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부정적 면모가 날카롭게 드러난다”고 말했다.

 그의 시에는 생활이 살아있다. 아빠와 아이의 다정한 대화는 시 ‘구름의 산책’으로 생생하게 걸어 들어왔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모니터에 둘러싸여 끊임없이 무언가를 읽는 현대인의 모습은 시 ‘호모 텔레비우스’에 담기고, 시 ‘개그맨’에는 직업인으로서 개그맨의 고뇌가 묻어난다.

 “저는 삶의 가운데 붙박여 있는 사람이에요. 일상이 시고, 시의 재료이고 삶 자체죠. 제 시는 구체적인 사건과 관계가 있어요. 경험에서 시가 나오다 보니 시를 쓰기 힘들죠.”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를 썼다. “그때는 시가 사회적인 힘이 있어서 좋은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었어요. 세상을 바꾸려고 쓰던 시를 요즘은 나를 바꾸려고 써요. 지금은 시가 일상의 혁명 정도는 할 수 있겠죠.”

글=하현옥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현승=1973년 전남 광양 출생. 2002년 계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수상하며 등단. 시집 『아이스크림과 늑대』 『친애하는 사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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