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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부의 이미지를 일신한 이귀영 여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가정주부들끼리 모이면 으례 나오는 화제가 가정부로 인해서 겪는 고통에 관한 얘기이다.
우선 구하기 힘들고, 구해놓으면 자꾸 나가고, 비위 맞추기 아니꼽고, 가끔은 물건까지 집어들고 나가는 일이 있다는 게 그 고통의 내용이다. 가정부들 쪽에서 들어보면 그보다 훨씬 많은 양의 고통스런 얘기가 나올 것이다. 차별대우는 고사하고 끔찍한 방법으로 학대하는 일까지 있으며, 거의 24시간 신경 쓰고 노동하는데 비해 보수가 적고, 직업인으로서의 긍지는커녕 기본적인 인권조차 찾을 수 없다는 등 이쪽 고통은 더욱 심각하다,
서울 YWCA가 66년12윌 처음으로 가정부 훈련을 실시한 것은 이 양쪽의 고통을 최소한도로 줄이고, 무엇보다도 가정부 자신에게 직업의식을 길러주자는 의도에서 였다. 직업의식을 갖기 위해서는 우선 알아야 하겠다는 원칙에 따라 강습내용은 예절·위생·세탁·아이들 돌보기·환자간호·요리·연료사용·문화주택 시설 설명 등으로 짜여졌고, 남의 집에 가서『무식하고 촌스럽다』는 깔 보임을 당하지 않도록 충분한 고려를 했다.
이귀영 여사(48·서울 용산구 도원동8의14)는 직업인으로서의 「프라이드」를 갖고 가정부 강습을 받은 최초의 수강생이었다. 함흥에서 영생여학교와 간호원양성소를 수료한 그는 6년전 남편이 별세하자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직업으로 가정부를 택했던 것이다. 6년전까지 그는 교양을 갖춘 가정부였고 이런 몸가짐을 가정부란 직업으로 인해 손상되는 일이 없이 수많은 가정의 부업 속에 가정부의 「이미지」를 일신해왔다.
지난 4년 동안 이 여사는 월 평균 l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려왔고 그 돈은 여학교에 다니는 세 딸들과 자신의 생활비로 빠듯하게 쪼개어 써왔다.
YWCA는 그 동안 11회의 강습을 통해 2백73명의 수강생을 배출했고 이중 70명 정도가 현재까지 Y에 등록되어 일하고 있다. 여기 등록된 가정부는 상오9시∼하오 6시까지 9시간씩 출근해서 일하는 시간제 가정부로서 임금은 점심을 제공받고 하루3백원, 김장·잔치·큰 빨래 등으로 격무일 때는 5백원씩 받도록 규제하고있다.
일은 YWCA 회우부에서 알선하고 있는데 한번 어떤 가정과 인연을 맺게되면 Y를 통하지 않고 직접 연락이 오가기도 한다. 시간재 가정부를 원하는 신청은 매달1백50가정정도 Y에 접수되고 있으며 한번 써본 가정이 연달아 신청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회우부에서 가정부문제를 담당해온 신춘희씨는 말한다.
가정부와 숙식을 함께 하는데 따르는 신경 쓸 일도 없고, 일을 한꺼번에 몰아서 할 수 있으며 보통 때 작은 일은 가족끼리 협동해서 하게된다는 이점 때문에 특히 교육받은 주부들 사이에서 시간제 가정부가 인기라는 것.
18세∼50세 사이의 나이에 질병이 없고 신원이 확실하고, 용모단정하고, 한글을 해독할 수 있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정부 강습은 연3회쯤 부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Y는 등록 되어있는 가정주부들의 월례회를 주최해서 서로의 경험담과 실수한 얘기들을 나누고 또 원하는 요리의 강습도 알선해주고 있다.
월례회의에서는 물론 차별대우·멸시 등 재래식 가정부 취급에 대한 불평이 나오기도 하지만 서로 모이는 사이에 가정부로서의 철저한 직업의식이 자라나고 차별대우를 물리치는 마음 자세를 갖게된다. 수강자의 대부분이 30, 40대 가정주부들이며 아이들은 어느 정도 길러놓은 후에 생기는 여가를 가정부라는 부직으로 메우겠다는 생각으로 오기 때문에 가정부라는 직업을 열등의식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있다.
어떤 부인은 아파트에서 매일 2시간 일해주고 1백원씩 받는 일자리를 같은 아파트 안에 5·6가정씩 마련, 월수입 1만5천원 이상을 올리기도 한다.
이귀영 여사의 전례는 너무도 버려진 채로 있는 나이 어린 가정부들에게도 서서히 빛을 비춰 주는 공헌을 하게될 것이다. <장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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