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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이고, 찍고 … 미술로 더 뜨거운 대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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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구사마 야요이의 설치 ‘망각의 방(The Obliteration Room)’. 온통 하얀 방에 관객이 들어가 색색의 동그란 스티커를 맘껏 붙이며 완성하는 작품이다. [사진 대구미술관]

섭씨 37도, 체감온도로 쳐도 사람 체온을 훌쩍 넘는다. 그러지 않아도 더운 대구, 지금 이곳이 미술로 뜨겁다. 대구 수성구 대구미술관서 열리는 구사마 야요이(草間彌生·84)의 대규모 개인전 때문이다. 생존 일본 미술가 중 최강자로 꼽히는 구사마의 회화·조각·설치·영상 등 118점이 출품된 ‘내가 꾼 꿈(A Dream I Dreamed)’전이다.

 전시 시작 27일 만인 15일까지 누적 관람객은 9만 4410명, 하루 평균 3500명이 다녀갔다. 대구 유일의 시립미술관으로 2011년 개관한 이곳의 지난해 총 관람객은 15만 명이다.

 전시장 들머리 18m 높이 홀엔 빨간 바탕에 흰 폴카도트(물방울 무늬)의 대형풍선들이 설치돼 분위기를 띄웠다. 13일 오후 딸(7)을 번쩍 들어 풍선 속 설치를 들여다보게 하던 상진(36)씨는 “인터넷서 전시장 사진을 보고 안동에서 찾아왔다. 대구미술관에 온 것은 처음이다. 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아이에게 이 색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미술관 2층 홀에 전시된 강아지 조각들. [사진 대구미술관]

 구사마는 열 살 무렵 빨간 꽃무늬 식탁보의 잔상이 온 집안에 보이는 등 착란증상에 시달렸다. 일본화를 공부한 뒤 1957년, 28세에 뉴욕으로 갔다. 바디 페인팅 등 행위예술을 벌였고, 베니스 비엔날레(1966)에서 100개의 은색 공을 개당 2달러에 파는 퍼포먼스를 벌이다 주최 측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60세에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4년 뒤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 대표작가로 참여했다.

 지난 4월 도쿄 신주쿠의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공황장애로 30년 넘게 고생했다. 어려움을 이기기 위해 그리고 또 그렸다. 예술은 내게 최고의 의사다. 그림 그리는 게 너무 좋아 잠잘 때도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도 그릴 거다. 여러분이 내 작품을 감상하고, 사랑해주시면 감사하겠다. 나의 미술은 사랑, 무한의 우주에 대한 메시지 같은 것이다.”

 그의 전시가 인기인 것은 인간 승리의 드라마, 반복되는 점과 그물이 자아내는 색감, 거울을 통해 공간으로 무한 확장되는 설치를 체험할 수 있게 한 작품, 그리고 미술관이 특유의 엄숙함을 버리고 자유롭게 사진 촬영을 허용해 블로그·SNS를 통해 입소문을 전파한 것이 주효했다. ‘현대 미술은 어렵다’는 편견을 깨며 평소 미술관을 찾지 않던 관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다만 전시장엔 설명이 부족해 이 많은 작품이 어떤 기준으로 전시됐는지, 구사마의 이력과 작품 세계의 변모는 어떠했는지 알기는 어렵다.

 이번 전시 예산은 5억원, 구사마의 작품 한 점 사기도 어려운 예산이다. 지난해 가장 비싸게 거래된 그의 회화가 14억 9000만원이었다. 지방 미술관으로서는 이례적인 이 현대미술 거장전은 도쿄 모리미술관 선임 큐레이터 출신인 김선희 관장이 구사마 스튜디오의 협조를 얻어 성사시켰다.

 김 관장은 “미술계 밖 사람들이 찾는 미술관으로, 신생 시립미술관의 공공성을 강화코자 한다. 쉽게 다가가고, 사진 찍으며 즐기는 현대 미술에 대한 수요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3일까지. 이후 중국·마카오·대만·인도로 순회한다. 성인 5000원, 청소년 3000원. 053-790-3000.

대구=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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