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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제한 협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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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16일부터 빈에서 개막된 미-소 전략무기제한협상(SALT)은 17일에 이어 20일 두 번째 실무회담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 회담에서 미-소 양측은 여전히 서로 상대방의 전반적인 의도를 탐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회담이 열리기에 앞서 미-소는 작년 11월7일부터 12월22일까지 헬싱키에서 예비협상을 개최한바 있었으며, 이번 회담은 동예비협상에서의 합의에 입각한 것으로 동서 양거대국이 핵군축 문제에 얼마나 신중하면서도 깊은 관심을 가졌는가를 잘 나다내고 있다할 것이다.
전략무기라는 것은 전략적 공격 또는 방위를 위해서 사용되는 무기의 통칭으로서 단적으로는 주로 핵무기를 가리킨다. 오늘날의 핵무기는 그 형태와 성능에 있어서 자꾸 다양화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수 또한 부쩍부쩍 늘어만 가고 있는 실정이다. 몇 해 전만 하더라도 가장 발달한 핵무기는 기껏 대륙간탄도탄(ICBM)이었으나, 오늘날에 있어서는 그것을 방위할 수 있는 방위용 미사일(ABM)과 또 그것을 꿰뚫을 수 있는 다탄두탄(MIRV=복수독립목표재돌입탄체), 부분궤도폭격체계(FOBS) 등이 속속 개발, 배치되고 있는 중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이르러서는 이 밖에도 수중발사 장거리 미사일(ULMS), 신형 유인전략폭격기(AMSA) 등등 날로 새로운 무기의 개발이 외신을 통해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미-소 핵무기 제한협상의 목적은 바로 위와 같은 계속적인 핵무기의 개발로 초래될 가공할만한 결과를 미리 예방하여 인류공멸의 위기를 구하고 그것에 소요되는 수 백억 달러의 경비를 절약해 보자는 데 있다. 그러나 한편 이 협상은 이미 조인된 부분적인 핵실험금지조약(63년8월5일)이나 핵확산금지조약(67년1월27일)과는 근본적으로 그 성격을 달리 한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즉 전자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한 미·소등 강대국의 입장에서 여타각국의 핵보유를 제한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반면, 후자인 이번 미소핵무기제한협상은 그들 스스로 자기들의 핵무기를 제한한다는 것이며 이는 군축협상사상 가장 실질적인 중요 협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미·소 전략무기제한협상은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얼른 보기엔 그다지 큰 관심을 가질 만한 대상은 아니라 할는지도 모른다. 한국은 전략무기를 가지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전기한 협상의 성과 여하간에 그것이 직접적으로 미칠 영향이라는 것을 별로 실감 있게 생각하기 어려운 처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더 큰 눈을 뜨고 볼 때 그것이 파생할 국제정치정세의 변화양상이라든지 또는 그것이 한국정세에 간접적으로 미칠 영향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가장 개연성이 많은 사실을 든다면, 미-소 전략무기제한협상의 타결은 미-소 평화공존체제를 더욱 진전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런 경우 미국이 소련의 위협을 과소 평가하고, 전략 무기를 현상에서 유예하거나, 동결하여 종래 우위를 확보했던 무기체계와 전략을 전도시킬 위험이 전혀 없지도 않을 것이다. 이는 지난 몇 해 동안 핵실험금지조약 또는 핵확금조약으로 핵무기생산의 억지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련이 ICBM을 비롯한 그밖의 핵무기를 대량으로 생산 개발하고 있는데서 잘 입증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전략무기제한협상을 계기로 국내에서 말썽 많은 세계전략체제를 후퇴시키며, 이른바 닉슨·독트린 같은 것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시켜 해외주둔군의 철수를 더욱 촉구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미-소 전략무기제한협상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소이는 바로 이러한데 있다고 하겠다. 특히 한국의 입장에서 명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평화공존기운이 완연하게 감돌고 있는 유럽 정세와는 판이하게 다른 한국정세에 대한 경각심을 이완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라 하겠다. 우리는 여전히 호전적인 북괴의 도전에 직면해 있음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며, 소련의 평화공세는 한국정세에 관한 한 오히려 위험지수의 상승이 될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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