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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승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심야의 TV중계는 감격적이었다. 18일 새벽 2시54분(한국시간)남태평양 상공엔 점하나가 나타난다. 이것은 순간 순간 큰 점으로 확대되더니, 낙하산으로 변한다. 아폴로13의 모선 오디시호의 착수광경이다.
TV카메라는 별안간 휴스턴우주본부로 초점을 모은다. 터지는 환호성! 오디시호는 바다 위에 떨어지면서 자취를 감춘다. 어떻게 된 영문인가? 아니다. 그 순간에 검은 괴물 같은 것이 다시 수면으로 떠오른다. 현지중계아나운서는 『Bird's-eye target!』라고 감탄, 감탄한다. 불구의 아폴로치고는 너무도 정확히 착수점에 맞아떨어진 것이다. 헬리콥터는 어느새 여기저기서 달려온다.
잠수부가 뛰어들어 오디시호의 허리(?)에 부대를 감는다.
해치(출입구)를 여는가 싶더니 다시 닫는다. 이제부터는 모든 작업진행을 회수함 이오지마호의 지휘를 받는다.
드디어 악대의 유쾌한 주악이 울리며 우주인들은 붉은 양탄자를 밟는다. 첫걸음은 비실비실, 수병이 얼른 부축한다. 함장인 듯 싶은 고급장교가 그들을 영접한다. 『Welcome aboard the IwoJima!』(여기 온 것을 환영합니다).
그 중계광경을 지켜본 시청자는 전지구에서 6억인. 오히려 아폴로11호의 역사적인 월착륙 못지 않은 새로운 감격과 흥분을 자아내는 것 같다.
아폴로계획의 성공률은 99·9999%로 계산되고 있다. 실패율은 0·0001%. 미국은 바로 이 불가능의 실패를 이긴 셈이다.
아폴로11호의 성공이 문명의 개가라면 아폴로13호의 실패는 인간의 승리인 것도 같다. 우주와의 비정하고 잔혹한 대결에서 인간은 결코 좌절하지 않은 것이다. 『인간은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파멸할지는 몰라도….』
헤밍웨이는 그의 명작 『바다와 노인』에서 이렇게 절규한다. 정말 그것을 실감하게 해준다.
어쩌면 아폴로13호의 실패가 해피·엔딩으로 끝맺은 것은 미국에 새로운 활기를 넣어 줄 것도 같다. 최근에 어지러운 국제정세는 미국을 매너리즘 속에 빠뜨려놓은 느낌마저 없지 않았다.
초대국 미국의 무력감이 새삼 두드러지게 드러나 보인 것이다.
그러나 아폴로13호는 차라리 성공했던 경우보다는 실패한편이 정치적으로는 더욱 의의가 큰 것 같다. 과학문명 독주 속에서 휴머니즘의 면모를 발견하는 아이러니도 아이러니지만, 미국의 여유와 저력을 새삼 과시해준 그것은 실로 미국으로는 값진 것이다. 레닌 1백주기를 맞는 크렘린에도 또 하나의 그림자를 지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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