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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연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건조한 날씨가 계속된다. 요즘 서울지방의 습도는 불과 30% 전후. 쾌적습도에 비하면 절반에도 미달한다. 이런 건조현상은 전국에서 볼 수 있다.
지난 주말 하루동안에 무려 34건의 산불이 일어났다. 5백여 정보의 산림이 재가되었다. 하필이면 주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불길이 일어났다. 등산객들의 부주의 때문이다.
최근 주말의 상춘인구는 50만명을 헤아린다. 앞으로 신록과 함께 행락시민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상춘의 길은 즐겁지만은 않다. TV에서 보여주는 유원지의 풍경은 쓰레기더미이다.
시민들이 교외의 야산을 찾는 것은 정신의 휴식을 갖기 위한 것이다. 비좁고, 어지러운 생활권을 넘어, 자연의 품에 안겨 심호흡을 하는 것은 여간한 상쾌감을 주지 않는다.
바로 그 자리에 무질서와 쓰레기의 풍경이 벌어지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도시의 각박한 생활에서 얻어진 에고이즘은 자연 앞에서도 숙연함이 없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주택이 밀집하고, 단지화 할수록 필요한 것은 공동생활의 모럴이다. 이런 때의 에고이즘은 서로 타협할 수 있는 조화와 균형 속에서 이루어져야한다. 어느 한쪽에서 그것을 지키지 않을 때는 걷잡을 수없이 불편하고 불쾌한 지경에 빠진다.
행락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호사가가 스틱을 짚고 산책을 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런 고전적인 풍경은 적어도 도시에선 찾아 볼 수 없다. 눈부신 빛살과 신선한 공기 속의 자연은 시인의 감정에나 남아있을 뿐이다. 현대의 산과, 물과, 호수는 도시의 정신건강을 위한 하나의 자연병풍이 되고 만 것이다. 그처럼 정숙하고 맑은 분위기가 필요하다.
바로 그 자연을 가꾸는 식목일 전후에 산불이 일어난 것은 아이러니마저 느낀다. 상춘객들은 봄을 가꾸기보다는 그 파괴에 앞장선 셈이다. 생활의 하찮은 여유감은 이렇게 우리의 내적 질서마저 풀어놓은 것인지-.
요즘의 건조현상은 미풍만으로도 화재를 일으킬 수 있다. 이런 철일수록 우리는 공동의 휴식처를 보호하는 최선의 모럴을 지켜야 할 것이다. 그까짓 담뱃불하나 간수하지 못해 그나마 헐벗은 산야가 파괴된다는 생각은 대자연 앞에 면구스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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