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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 어록비에 윤 의사 대신 후원자 이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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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윤봉길 의사 어록병풍. 윤 의사가 생전에 강조했던 말을 담은 기념물인데 농협예산 군지부 OOO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윤봉길 의사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충의사 일부 기념물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윤 의사 어록탑에서 오자(誤字)가 발견된 데다 어록마다 다른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혼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위치한 충의사. 1968년 처음 창건된 뒤 2000년 어록탑, 2001년 12월 기념관이 차례로 건립되면서 충의정신의 학습장으로 제 모습을 갖췄다. 기념관 왼편에는 윤 의사의 역사관과 나라사랑 정신을 담은 어록탑이 세워져 있는데 뒤편으로 어록병풍, 좌우에 보조탑이 자리잡고 있다.

 어록병풍은 윤 의사가 생전에 했던 말 중 후대에 본보기가 될 만한 글을 모아 만든 기념물이다. 7개의 어록이 병풍처럼 펼쳐졌는데 ‘뜻을 세우다’ ‘다같이 나가자’ ‘바로 보고 배우자’ ‘생명창고를 지키자’ ‘자유를 쟁취하자’ ‘큰 사랑을 깨닫자’ ‘이상을 실천하자’ 등의 제목으로 윤 의사의 사상이 담겨져 있다. 하지만 어록의 맨 아래에는 윤 의사의 이름 대신 어록탑 건립 당시 후원금을 낸 기업인과 종친회, 농협 관계자 등의 이름이 버젓이 자리를 자치했다. 윤 의사의 어록이 아니라 마치 후원자들이 했던 명언처럼 착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어록탑 아래에 놓여진 책 모양의 월진회가와 월진회금언(月進會金言) 역시 건립 당시 비용을 낸 심대평 충남지사와 권오창 예산군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통상 기념관과 기념탑 등에 새기는 어록에는 기부자의 이름을 직접 넣지 않고 별도로 ‘기증, 도움을 주신 분’이라는 동판, 석판을 만든다. 어록병풍에서는 오자도 발견됐다. ‘이상을 실천하자’는 글에는 ‘무었이냐?’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는 ‘무엇이냐’의 잘못된 표기다. 충의사를 방문한 김인규(44·충남 아산시)씨는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왔는데 어록탑에 생소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놀랐다” 고 말했다.

 어록탑 왼쪽에 위치한 보조탑에는 윤 의사의 학습관(學習觀)이 둥그런 돌에 한자(漢字)로 네 줄이 새겨져 있다. 학습관은 윤 의사가 15세 때 유생들이 참가한 중추절 시제에서 장원을 차지한 옥련환시(玉連環詩) 7언절구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도 문제가 발견됐다. 문구 가운데 ‘淸(맑을 청)’이라는 글자가 나오는데 본래 ‘請(갤 청)’의 오기다. ‘淸’이라는 글자가 두 번 나오는 데 모두 틀린 글자다. 기념관 측은 본지의 취재가 시작될 때까지도 글자의 오류를 알지 못했다. 어록탑이 건립된 지 12년이 지나도록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기념관 운영·관리를 담당하는 예산군관광시설사업소는 “어록탑 건립은 월진회에서 주관한 것인데 맞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관광시설사업소는 어록탑 건립을 주도한 월진회 측과의 협의를 거쳐 틀린 부분을 바로잡겠다고 했다.

글·사진=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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