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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원해로 뻗는 기계화어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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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재작년만해도 5t급 이하의 어선 7척이 연안어업으로 잡은 고기로 입에 풀칠을 해오던 북제주군 한림읍 한수리는 지난해 2월 민어어장을 발견하면서부터 흥청거리기 시작했다. 1백67가구 8백30명이던 주민이 2백11가구 1천3백여명으로 부쩍 늘었고 1천6백97만원을 들인 종합 가공공장까지 들어섰다. 다만 늘지 않은 것은 술집등 유흥업소다. 3대 어촌계장인 강철종씨(31)는『좋은 날씨엔 모두 고기를 잡으러 나가고 궂은 날씨면 그물 손질을 하기 때문에 쉴 사이가 전혀 없다』면서 술을 마시거나 노름같은 것은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고 은근히 자랑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짐과 함께 애연가들의 담배도 새마을이나 백조에서 파고다·신탄진등으로 바뀌었다. 68년까지 볼 수 없었던「슬레이트」지붕이 50여가구에 덮였고, 전축을 가진 가구가 절반이 넘는 1백12가구,「라디오」가 없는 집은 거의 없다.
민어어장이 발견된 작년 한햇동안 이 마을 어부 l백80명이 낚은 어획고는 모두 4천여만원. 민어에서 1천2백만원, 새우에서 5백만원, 이밖에 도미·능성어·삼치·소라등 전략어종(수출용)에서 고등어·가오리·상어·변자리에 이르기까지 10여종에서 2천여만원의 어획고를 올렸다.
『한림어업 협동조합에 속한 17개 어촌계 가운데 한수리 1개 어촌계가 차지하는 어획량이 60%에 달한다』는 동 조합총무계장 양상봉씨(38)는 앞으로 2, 3년 뒤에는 전국 제일의 어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어선수는 22척.
대부분 10t에서 20t 규모의 중형 선박이다. 이것을 75명의 선주가 협업으로 공동소유하고 있어 서로의 이익과 손실을 분배한다.
외지에서 온 60여명의 선원을 포함, 1백5명의 선원이 얻는 소득은 전세의 50%이다.
이곳에서 태어나 15세 때부터 바다와 함께 살았다는 홍관진씨(44·한수리 333)는『해방직후에는 조그만 돛배로 고기를 잡아왔고 5년전만해도 2t, 3t짜리 7척으로 5마일 안에서만 조업을 했으나 이제는 최고 30마일까지 조업범위가 넓어졌다』면서 늙을 때까지 어부생활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작년에는 가구당 2백만원 정도의 어획고를 올렸지만 올해부터는 배마다「롤러」를 장치, 손으로 당기던 그물을 기계로 당기게 되어 적어도 2배정도의 수확을 얻을 꿈에 부풀어있다.
3월 현재까지의 어획고는 민어에서 8백만원, 새우등 다른 고기에서 1천만원등 거의 작년 한해 어획고의 절반의 수익을 올렸다.
물론 어선이나 어구등에 막대한 돈이 들기 때문에 어획고가 전부 수입은 될 수 없다.
10t짜리 어선을 만들려면 적어도 2백만원은 있어야 하고 고기를 낚을 삼중자망등 어구를 갖추는데 70∼1백만원이 든다.
선주의 한 사람인 고창년씨(35)는『작년 한햇동안 1백만원정도의 순수입을 올렸다』면서 『배 값을 7년동안 할부상환해야하기 때문에 아직은 마음을 놓을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생활이 나아지자 마을 사람들은 신용조합을 결성, 1년만에 1백40만원의 돈을 모았고 이 돈을 수익성 있는 다른 사업이나 어선 건조비에 쓸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조합은 지난해 수협의 장려상을 받았다.
이곳 어부들의 학력은 중졸 30%, 고졸 50% 등이며 대학 졸업자도 9명이나 된다.
제주대 농과를 졸업한 김중관씨(35·한수리 879)는『이곳 태생이므로 지역사회 개발에 협조하고 소독도 수산업이 몇배 높기 때문에 어부가 되었다』면서『2백만원 정도는 모은 편』이라고 자랑했다.
한경면에서 이 마을로 온 고순부군(19)은 1년6개월만에 21만원을 저금, 군인갔다 와서는 선주가 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고 임순경씨(34)는 선원 1년만에 선주가 됐다.
초대 어촌계장 김관수씨(43) 는『7년전에 주민들 손으로 만든 포구가 너무 좁아 4년전에 30m의 방파제를 새로 쌓았다』면서『배를 맬 곳이 없어 이중, 삼중으로 매기 때문에 바람만 세면 서로 부딪쳐 파손되는 일이 많다. <이돈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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