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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2)파괴당한「고씨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과거 십수년동안 동굴조사를 해왔다. 동굴마다 우리를 한탄케 만든 것은 동굴의 무참한 파괴였다. 억겁의 신비를 안고 있었고 수천만년에 걸쳐 응결되었을 희디흰 종유석의 기둥엔 검은 낙서가 되었고 탑같기도 부처 같기도 한 석순이 무참하게 갈려져 나간 것을 보았을 때의 불쾌와 부끄러움, 무지의 소치를 한탄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동굴중에서 그래도 영월의 고씨굴은 덜 오염되었고 덜 파손된 아름다운 종유굴이다. 이 상태만으로도 불행중 다행스럽게 여겨왔었는데 군 당국의 관리소홀로 더욱 황폐화 해간다는 신문도를 봤을 때 분함을 금할 수 없었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동굴이며 앞으로 관광개발의 임지조건등 가장 우량한 동굴로 꼽혀왔던 고씨굴이 그 지방의 주민들 손에 의해 파손 또는 오염되어 가고 있다 하니 개탄할 일이다. 석순의 파손보다도 더 금기해야 할 것은 횃불이다. 솜뭉치에 석유나 중유를 묻힌 횃불을 들고 동굴에 들어가면 내뿜는 검은 그 울음이「핑크」빛의 종류석 천장을 망치고 변색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원도 내에 산재한 그 많은 동굴은 모두 광산용「간데라」불과 횃불의 그을음으로 망쳐져 있었다.
정선의 비룡굴에는 동양에서 희귀한 하얀「캘사이트」가 발달되어 있었으나 횃불에 그을려 변색되었고 동굴내부는 제주도 용암굴처럼 시커멓게 오염되어 이미 동굴가치를 상실해 버렸다. 동굴 규모로나 석순의 성장등 가장 현란했을 성싶은 신비의 동굴이 더러운 손에 의해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이 동굴에서 몇 해전에 약 세「트럭」분의 석순이 실려 나갔다는 주민들의 증언을 들었다. 망치로 무참히 갈려온 이 석순이 명동거리에「리어카」로 실려 나와 몇 10원씩에 엿 가락처럼 팔려 나갔었다.
지금도 영월읍에 가면 동굴에서 잘라온 석순으로 정원을 만들어 놓은 여관이 있다. 처음에 나는 밤중에 찾아든 여관이었기 때문에 몰랐으나 잠을 자고 나서야 그 석순의 정원을 발견하고 놀랐다.
그 여관주인은 무식층이 아니었다는데서 더욱 놀랐다. 일세기 동안에도 몇「밀리」밖에 자라지 못하는 이 소중한 석순을 잘라다 죽순 밭의 정원을 만든 그 주인보다도 이를 보고도 무감각한 군 관리자의 무관심이 더욱 밉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고장의 명물을 마구 파괴해 가는 그 지역사회의 불행을 자각할 줄 아는 때가 언제 올 것인가? 동굴의 발견보다 더 시급한 것은 철저한 관리에 있음을 당국이 알아 줬으면 하는 생각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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