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5)음악|음치와 거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며칠전 어느 선배댁에서 진귀한「테이프」를 들었습니다.「토스카니니」「푸르트뱅글리」와 함께 사라진 세기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브루노·발터」가 연주회를 앞두고「뉴요크·필하머니」를 연습시키는 현장을 녹음한「테이프」였습니다.「베를린」태생인 그는 독특한「액선트」의 영어로 주의를 주면서 짧은「프래이징」(음절)을 몇 번이고 되풀이시키며 곧 잘「멜러디·파트」를 노래불러 보였는데 노래라기에는 너무도 음정이 엉망이었습니다. 「바이얼린」의 대가인 선배는 웃으며 제발 노래는 안 불렀으면 좋은데라고 하셨지만, 나는 그 노래가 오히려 재미있었습니다.
세기의 대지박자가 음치일 까닭은 없고, 그렇다면 입으로 발성하는 가락과 그가 귀로지각하고 있는 가락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브루노·발터」는 증명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항간에는 자기를 음치라고 체념하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저는 음치에요』하고 비관하는 여성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래부를 때 음정을 맞추지 못하는 것과 음에 대해서 둔감하다는 것과는 반드시 같을 수 없다는 실증을 대지휘자「브루노·발터」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팬」이 많은「쇼팽」은 젖먹이 시절에 음악을 들려주면 놀라서 경련을 일으키는 아이였습읍니다.
어머니가「쇼팽」을 뉘어놓고「폴란드」의 민요를 나지막하게 불러서 잠재우려고 한다든지,「프랑스」태생인 아버지가 서투른「플루트」로 고향인「로렌」지방의 가락을 불러 본다든지 하면, 여지껏 멀쩡하던「쇼팽」아기가 벌에게나 쏘인 것 처럼 손발을 버둥거리며 울었다고 합니다.
「쇼팽」은 음에 대해 너무나 날카로운 귀를 가졌었기에 충격적인 반응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음악은 음을 소재로한 귀의 예술입니다.
우주 공간의 음은 무한대라고 할만큼 많습니다.
그 많은 음에서 작곡자가 추려내어 마음의 노래를 조형한 것이 음악입니다.
마음의 노래가 있기에 음악은 예술이라고 하겠지요. 마음의 노래를 전해야만 하겠기에 연주자가 필요한 것이겠고 마음의 노래이기에 연주자에 따라서 해석과 표현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겠지요.
「브루노·발터」가 입으로 부르는 가락과는 달리 귀도 지각했던 것은 작곡자가 그렸을 마음의 노래였을 것입니다.
또 음악은 마음의 노래이기에「베토벤」은 귀가 먹은 뒤에도 작곡을 할 수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귀의 예술인 음악은 마음의 귀를 열고 작곡자의 마음의 소리와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작곡자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의 인간과 생활에 파고 들어가 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인간과 생활을 살피러 할 때 시대라는 거대한 벽의 존재를 우리는 보게되고, 아무리 위대한 작곡자도 마음은 시대를 뛰어넘고 예견한다고 하지만 귀는 시태를 뛰어 넘지 못한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무한대한 음의 소재도 시대의 한계는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대의 양식이라는 것이 생기게 되겠습니다마는 아무리「베토벤」이라도 전자 음을 써서 마음의 노래를 불러볼 생각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 말을 뒤집으면「베토벤」이 오늘에 살았다면 전자 음으로 마음의 노래를 불렀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에「아폴로」13호가 월세계를 향해서 지구를 떠나던 순간의 폭음에서 어떤 거대한 음악보다도 박력 있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주시대에 사는 인간이 감동할 마음의 노래는 우선 음소재부터 달라야 되리라는 생각을 한 것은 나뿐이 아니겠지요.
우리는 시대적인 음소재에 대해서도 예민한 귀를 길러야겠습니다. 새로운 마음의 노래를 듣기 위해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