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한수] 진퇴유곡의 자충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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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충수는 스스로를 속박하고 스스로의 목을 죄는 수로 바둑의 금기(禁忌)다. 그러나 모든 수는 이득을 추구하는 속성이 있어 그 이득에 취해 부지불식간에 자충수를 두게 된다.

고수들은 이 점을 이용한다. 상대에게 미끼를 제공해 자충수를 유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형세 때문에 부득이하게 자충수임을 알면서도 그 길을 택하는 비극적인 경우도 있다.

#장면1=왕위전 예선전 결승전.서능욱9단(흑)과 김주호2단(백)의 대결이다. 국면은 백이 약간 우세.따라서 흑은 촌보도 늦출 수 없는 장면인데 백이 1로 먹여쳐왔다.

분명 자충을 유도하는 수. 두점을 살리는 날엔 필시 화를 당하고야 말 것이다. 하나 진퇴유곡의 흑은 2로 따내고 4(1의 곳)로 이은 다음 운명을 하늘에 맡긴다. 이제 중앙 흑엔 무슨 수가 있을까.

#장면2=백1의 끼움수가 흑의 자충을 응징하는 결정타였다. A와 B를 동시에 노리는 이 백1로 인해 흑은 최소한 반토막을 떼어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떼어주면 어차피 끝난 것. 서능욱9단은 A에 두었고 백이 B로 끊자 돌을 던졌다. 옥쇄를 택한 것이다.

김주호(19)2단은 이 판을 이겨 막차로 왕위전 본선리그에 합류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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