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좌석 디자인 하나 살짝 바꿔 문닫을 뻔한 항공사 살렸다는데…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저자: 이돈태 출판사: 세미콜론 가격: 1만6500원

모두들 디자인을 외친다. 기왕지사 비슷비슷한 성능이라면 예쁘고 특이해야 살아남는다고 믿는다. 애플의 성공 비결 역시 디자인이니까. 어느새 CEO들 사이에선 ‘디자인 경영’이 종종 화두로 등장한다.

그런데 막상 각론으로 들어가면 입을 다문다. ‘어떻게’라는 단계에선 갈피를 잡지 못한다. 실력 있는 디자이너를 뽑는 것? 매장이나 제품 패키지를 바꾸는 것? 아니면 여러 가지 샘플을 좀 더 신중하게 보고 결정하는 것?

이 책은 그 답답하게 고여 있는 마음에 물꼬를 튼다. 기업의 성공 열쇠인 ‘디자인 경영’에 대한 안내서다. 뜬구름 잡는 얘기가 아닐까 싶지만 저자의 남다른 이력이 이를 잠재운다.

그는 2000년 만성적자에 허덕이던 영국항공(브리티시 에어웨이)을 부활시킨 구원투수였다. 비즈니스 좌석을 두 승객이 마주하도록 S자로 디자인한 것. 공간은 180도로 누울 수 있을 정도로 넓어졌고, 항공사는 20% 이상 더 많은 좌석을 설치하며 매출도 크게 높였다. 이 마법의 의자는 지금도 디자인 경영의 대표적 사례로 꼽힐 정도다. 그 역시 이를 계기로 탠저린이라는 디자인 회사에 인턴으로 입사한 지 7년 만에 공동대표에 오르는 입지전적 성공 신화를 만들어냈다.

책은 ‘대체 디자인 경영이 왜 필요한가’라는 점부터 일러준다. 지금까지 기업은 ‘인사이트(insight)’만 있으면 시장 예측이 가능했다. 논리적 데이터, 정량적 수치만 잘 꿰뚫으면 되는 문제였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고객 스스로도 표현할 수 없는 욕망을 이제 상상하고 예측해야 한다. 이 능력이 그가 말하는 ‘포어사이트(foresight)’다. 디자인의 중요성은 그래서 나온다. 도저히 말로 설명되지 않는 것, 상상 속 이미지를 현실화시켜 주는 것이 바로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대다수 업체가 이를 외면한다. “한국의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에 저렴한 가격으로 납품할 생각에만 골몰한다. 왜 디자인 경영이 기업의 생존 전략이 된다는 걸 모를까.”(61쪽)

어쨌든 본론은 지금부터다. 저자는 디자인 경영을 위해 CEO들이 가장 갖춰야 할 덕목으로 디자이너의 축적된 경험을 존중할 것을 꼽는다. 논리와 감성이 대비되는 경영자와 디자이너는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데, 그들의 새로운 시도와 철학을 인정하라는 얘기다. “디자인이 마케팅의 시녀가 되는 일을 경계하라”는 뜻도 된다.

더 중요한 점은 CEO 자신의 인식 변화다. 디자인이 성가신 숙제가 아니라 장기적 과제로 접근하면 오히려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하고, 또 이를 전사적으로 공유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일단 전략이 세워지면 이를 일관성 있게 끌어갈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CEO의 몫이다.

후배 디자이너들에 대한 당부도 담았다. 자신이 갖고 있는 전문성과 희소성을 냉정히 판단할 것, 디자인이 어느 날 번쩍 떠오르는 것이 아닌 거듭되는 고민의 산물임을 깨달을 것, 작은 디테일 하나가 전체를 바꿔놓는다는 식의 다소 교훈적인 얘기들이 나열되지만 저자의 경험을 녹여내 지루함이 덜하다.

책은 기업을 이끌거나 디자인을 책임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디자인에 대한 다양한 사색의 주제를 던져준다. 책 말미에 저자가 생각하는 ‘좋은 디자인의 10가지 원칙’은 창의적 작업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더 읽을 거리’로 제시해둔 디자인 경영 관련 도서들이 이 책의 유용성을 더한다.

이도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