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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문화읽기] 예술적 영감 불어넣은 'DNA 나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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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영국의 과학저널 네이처는 2001년 2월 15일 '인간 지놈'을 특별기획으로 다루면서 인상적인 표지디자인을 선보였다.

1천명이 넘는 사람들의 얼굴 사진 하나하나를 픽셀로 해서 거대한 이중나선형의 DNA를 만든 것이다.

이 예술적인 표지에 실린 1천명의 사진 안에는 DNA 구조를 처음 밝힌 제임스 웟슨과 프랜시스 크릭, 그리고 '유전학의 아버지' 멘델의 사진도 끼여 있어, 그들의 얼굴을 찾는 것이 과학자들 사이에선 작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올해는 영국의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일하던 웟슨과 크릭이 DNA의 구조를 밝혀낸 지 50주년 되는 해다.

그들은 DNA가 '긴 사슬 형태의 뉴클레오티드 두 가닥이 마치 새끼줄처럼 꼬여 있으며 4개의 염기가 그 사이에서 수소결합으로 약하게 연결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했다.

상대성이론.양자역학과 함께 20세기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손꼽히는 이들의 발견으로 인류는 생명현상의 이해와 유전질환의 치료를 위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게 됐다. 아마 웟슨과 크릭도 자신들의 발견이 이처럼 중요한 줄 처음엔 몰랐을 것이다.

네이처는 DNA의 분자구조가 밝혀진 지 50년이 된 것을 기념해 지난 달 특별호를 별도로 출간했다.1953년 4월 25일자 네이처에 실린 웟슨과 크릭의 한 쪽짜리 논문 원본을 포함해 20세기 후반 분자생물학의 발전을 정리하는 여러 논문을 함께 실었다.

그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옥스퍼드대 역사학과 교수 마틴 켐프가 DNA 이중나선 구조의 미학적 의미를 짚어낸 논문이었다.

네이처에 '문화 속의 과학'이라는 칼럼을 오랫동안 연재해 온 그는 DNA의 이중나선 모양이 그 자체로도 안정적이고 완벽한 구조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시각에서도 아름다움을 간직한 구조라고 주장했다.

DNA의 이중나선이 지금까지 신의 영역으로 여겨져 온 생명의 본질을 향해 접근하는 '계단'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그는 DNA 구조가 현대사회에서 생명과학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하고 있다고 해석하면서 '현대과학의 모나리자'라고 비유했다.

실제로 DNA의 이중나선은 20세기 후반 예술가들에게 많은 창조적 영감을 제공했다. DNA 이중나선을 모티브로 한 예술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설치미술가 로저 베리가 캘리포니아대학(데이비스 분교) 생명과학 빌딩 안에 설치한 'DNA'라는 작품이다.

이중으로 꼬인 나선 사이로 형형색색의 육각형 도형이 나선을 따라 얽혀 있는 이 작품은 아름다움을 넘어 신비롭기까지 하다.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 50주년을 맞아, 아무쪼록 이들 예술가들의 작품처럼 DNA가 이끌 우리의 미래도 강한 생명력과 인간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길 진심으로 바란다.

정재승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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