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실내육상경기장, 짓고 보니 국제경기 못할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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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실내육상경기장인 대구육상진흥센터 준비운동 구역(왼쪽). 50m 직선 트랙만 있고 국제경기를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150m 곡선 트랙이 없다. 오른쪽 위는 센터 전경이고, 아래는 5000개 관중석과 200m 타원형 트랙 6레인이 있는 주경기장 내부 모습이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정부와 대구시가 730여억원을 투자하는 국내 첫 실내육상경기장이 완공 두 달이 지나도록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국제기준에 미달하는 경기장 시설 때문이다. 이로 인해 내년 3월 여기서 열릴 예정이었던 국제실내육상경기대회도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대구시는 업체 측의 잘못이라며 준공검사 승인을 해주지 않은 반면 업체는 시의 잘못도 있다며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다.

 논란의 대상이 된 시설은 대구 삼덕동에 위치한 대구육상진흥센터다. 면적 2만1577㎡에 200m짜리 타원형 주로(走路·트랙) 6개 레인과 5000개의 관중석을 갖췄다. 100여 명이 숙식을 하며 훈련할 수 있는 ‘육상 아카데미’도 들어서 있다. 공사비로 국비 579억원, 대구시비 153억원 등 모두 732억원이 책정됐다.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유치하는 과정에 대구시가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에 건립을 약속한 시설이다.

 문제는 이 시설에 국제기준에 맞는 준비운동(warm up) 구역이 없다는 것. IAAF에 따르면 국제 공인 경기를 개최하기 위해 실내 경기장에는 150m 곡선 주로 4개 레인과 50m 직선 주로 6개 레인 등을 갖춘 준비운동 구역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구육상진흥센터는 직선 주로만 구비했을 뿐이다.

 전후 사정은 이렇다. 대구시는 센터를 짓기 위해 2010년 1월 입찰을 실시했다. 입찰 안내서에는 ‘IAAF 시설 규정을 충족하며 국제경기대회 개최가 가능하도록 기본설계를 수행한다’고 못 박았다.

 낙찰은 삼성물산 등 4개사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받았다. 컨소시엄은 그해 6월 설계를 대구시에 제출했다. 그러나 이 설계 자체에 잘못이 있었다. 입찰공고 때 시가 제시한 ‘국제규격에 맞는’ 준비운동 구역을 빠뜨린 것이다. 컨소시엄 측은 “국제공인 실내육상경기장을 처음 짓다 보니 규격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발주처인 대구시가 설계 심사를 하면서 이를 챙기지 못한 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대구시는 설계를 대구시지방건설기술심의위원회에 넘겨 심의하면서도 문제를 찾아내지 못했다.

 뒤늦게 하자를 발견한 대구시는 지난 5월 말 컨소시엄이 요청한 준공 승인을 내지 않고 있다. 준공과 동시에 주기로 한 잔금 85억원 역시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컨소시엄은 잔금 지급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상태다.

 시설 미비 문제로 당장 내년 3월 이곳에서 치르려던 국제실내육상경기대회 개최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10개국 선수 200여 명이 참가하는 대회다. 시는 일단 육상진흥센터 옆에 별도의 시설을 건립해 대회를 치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평소엔 생활체육공간으로 사용하고 국제경기 때는 웜업장으로 활용하면 국제경기대회를 열 수 있다”면서도 “100억원에 이르는 추가 사업비가 문제”라고 밝혔다.

대구=홍권삼·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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