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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독교적 입장|경술국치 60주·재 수교 6주…그 의의의 정립|윤성범(감리교 신대 대학 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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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기미 삼·일 운동은 당시 한국 기독교의 축소판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33인 중 절반이 기독교 목사와 평신도였다는 점도 있겠지 만은, 그 보다도 더 뚜렷한 사실은 기미 독립 선언문에 나타난 기독교 이상주의와 인도주의의 근본이념이 세계와 어느 독립 선언문보다도 완벽하게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그뿐이랴! 이 선언문이 지니고 있는 근본 취지를 그대로 실천에 옮겼다는 사실도 우리는 높이 평가해야만 하리라 생각한다.
우선 기미 독립 선언문의 작성자인 육당 최남선 선생의 사상적 배경을 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육당 선생은 서울 상동 감리교회 목사였던 전덕기 목사에게 결정적으로 정신적인 감화를 받은 사실이 그의 고백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가 임종에 이르러서 천주교로 개종 한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라고 보아야 될지 모른다.
좌우간 기미 독립 선언문은 어떠한 훌륭한 기독교 학자가 쓰더라도 그렇게 알차게 표현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 필자의 확신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 선언문은 그 당시 일인들의 잔학 무도한 표정에 대해서도 그들을 도리어 불쌍히 여기고 그들의 망상을 바로 잡아 줌으로써 회개하고 양국간의 평화를 수립해 보려는 아량 있는 필치로 표현되어 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창조에 의한 전 세계 인류는 다 한 형제자매라는 기독교 이상주의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모든 인류가 하나님 앞에서는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으며 칼을 가지고 침략하려 드는 제국주의적인 망동은 세계 정의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간직되어 있다. 그처럼 포악한 일인들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회개하고 바른 길로 돌아설 수 있는 가능한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양심적인 일본인들이 이의 언문을 읽었다면 감화를 받지 않을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성서적인 진리의 화신이 아닐 수 없다.
원수 사랑의 가장 현실적인 구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마지막으로 기미 독립 선언문은 신약성서 묵시록에 나오는「새 하늘과 새 땅」(신천지)의 관념으르「피날레」를 장식하고 있다. 기독교 이상주의의「오메가·포인트」인 것이다. 칼을 써 가지고 칼로 망하는 그 한 혈육의 세계가 아니다. 선언문 마지막의「만물의 소생」(아나카타스타시스)은 영어 번역으로는「모든 혈육의 새로워 짐」을 의미하여 성서적·종말론적 신천지의 사상으로 끝맺는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류는 평등하며, 무력으로써의 세계 통일은 구질서에 속하며, 낡은 관념인 것을 피력하고 있다.
삼·일 운동은 무저항주의에 입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기독교 사상에 철저히 근거하고 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삼·일 운동은 계급을 초월하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손에 손을 잡고 독립 만세를 부를 수 있었던 범 국민운동의 본보기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밀이 누설되지 않고 깜쪽 같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삼·일 운동을 하나의 역사적인 기념일로 관습적으로만 지킬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위대한 삼·일 정신을 오늘에 살리는 자들이 되어야 되리라고 생각한다. 형제를 미워하고 이간 붙이고 작당하고 배반하는 사특 한 언어 행동에서 탈피하여 고상한 애국 정신을 되살리는 일에 열중해야만 하리라고 생각한다.
우리 조상들의 폭넓은 아량과 굳건한 단결심을 우리는 다시 배워야만 되겠다. 이 독립운동에는 많은「에피소드」가 있다. 그들은 그 어려움 속에서도 언제나 약관 하였으며 그들이 「유머」의 사람들이었기에 장내에 대한 원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고식적 이해 관계에 좌우됨이 없고 자기를 부정하는 너그러운 양보 심을 가졌던 것이다.
필자는 오늘의 기독교 교인들이 정말로 이러한 위대한 조상들의 얼(정신)을 어느 만큼 받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이 있다. 앞으로 올 시대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로 모든 포악과 독재가 소멸되어지고 오직 도의의 세계만이 존재할 수 있는 세계가 되어야만 되겠다. 만일에 삼·일 정신이 모든 세계에 그대로 적용된다면 세계 평화는, 우리의 것이며 동시에 삼·일 정신은 또 하나의 세계사적인 성격을 띠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어 마지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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