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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에 민감한 수퍼 리치들 'K·A·R'로 눈 돌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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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서울 압구정동에 사는 전문직 종사자 김모(45)씨는 얼마 전 증권사 PB 소개로 은행 정기예금 8000만원가량을 우리은행 후순위채에 투자하는 KP물(달러표시 한국 기업 채권)에 옮겨 담았다. 4%대 초반 금리로 은행 예금 금리(평균 2.63%)보다 훨씬 높은 데다 안정성도 뛰어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아무리 후순위채라도 시중 대형은행 채권이라면 은행이 파산하지 않는 한 안전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은행 예금보다 조금이라도 높은 금리를 좇아 금융시장을 떠도는 투자 노마드(유목민)족들의 시선이 최근 회사채 관련 상품인 ‘카(KAR)’에 쏠리고 있다. KAR는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발행하는 외화표시채권인 KP물과 ABS(자산유동화증권)·RP(환매조건부채권)의 첫 글자를 딴 이름이다.

 KP물은 국내 기업이 외자를 유치하기 위해 달러나 엔화 등을 기준으로 발행한 회사채(외화채권)에 투자한다. 외화채권은 손꼽히는 우량 기업들이 발행하지만 국가신용도 등이 반영돼 국내에서 발행되는 회사채보다 높은 금리에 발행된다. 고액 자산가들이 가장 우선시하는 절세 측면에서도 분리과세가 적용된다. 하반기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 환차익도 기대할 수 있다. KP물은 우리은행·신한은행 등 은행채나 한국전력 등 공기업채, 제조업 관련 채권 등 종류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인기가 높은 건 안정성이 뛰어난 은행채와 공기업채다. 한국투자증권 강남PB센터 신동익 팀장은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1999년 이전에 발행된 한국전력 등의 KP물의 경우 이자소득세가 면제돼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말했다.

 KP물은 주로 증권사가 지점에서 사모펀드를 설정해 고객에게 소개한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지난해 말 2222억원이던 KP물 사모펀드 설정액은 5일 현재 2849억원으로 600억원 넘게 늘었다. 대부분의 KP물 사모펀드는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환헤지를 하고 있다. 만일 환차익까지 생각하는 공격적인 투자가라면 직접 KP물을 사들일 수도 있다. 대신증권은 지난달 25일부터 일반 투자자가 KP물을 직접 사고팔 수 있도록 중개 서비스를 시작했다.

 RP도 자산가들에겐 빼놓을 수 없는 투자 수단이 되고 있다. RP란 증권사가 약정 기간이 지난 후 금리를 더해 되사는 조건으로 발행하는 채권이다. 은행 정기예금의 증권사 버전인 셈이다. 연 4% 정도의 금리를 제공하고 금융채 등 비교적 우량 채권으로 구성돼 안전성이 높다. 다만 가입 장벽이 높은 게 흠이다. 증권사 신규 고객이거나 해당 증권사에서 판매한 금융 상품에 가입해야 RP 투자 자격이 주어진다.

 KDB대우증권은 올 들어 신규 고객을 대상으로 매주 월요일 120억원씩 연 4% 특판 RP를 공급한다. 이 RP는 지난달 26일까지 29주간 매진을 기록했다. 삼성증권은 증권사가 추천한 금융 상품에 가입하면 가입 금액만큼 RP에 투자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신규 고객 대상으로 3개월물 RP를 연 4% 금리에 판매한다. 증권사 관계자는 “약정 기간이 보통 90일·180일 등 1년 미만인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보유 기간에 해당하는 금리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ABS 상품은 요즘 뜨고 있는 수퍼 리치들의 투자 상품이다. ABS란 기업이 자금 조달을 위해 매출채권이나 보유 부동산을 담보로 발행하는 증권이다. 최근 회사채 시장이 어려워지면서 ABS 발행량이 급증하고 증권사들의 마케팅도 활발해졌다. LIG나 삼부토건 사태 때 문제가 된 ABCP(자산담보부기업어음)보다 만기는 다소 길지만 발행 절차가 까다로워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삼성증권은 지난달 30일부터 삼성물산이 지급보증하는 PF(프로젝트 파이낸싱) ABS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만기는 1년1개월이고 이자는 3개월 단위로 지급된다. 예상 이율은 연 3.1% 수준이다. 판매된 지 일주일 만에 전체 모집액인 500억원 중 300억원이 모였다. 삼성증권 고영준 채권상품부장은 “우량 기업이 발행하고 만기도 짧아 투자자들의 부담이 덜하다”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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