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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조와 소신으로 민주사 밝힌 별|추억과 유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떠나신지 10년이 되어도 겨레의 가슴속에 깊이 각인 된 선생의 모습은 아직도 선명하며 선생이 남기신 계훈들은 여전히 귀에 쟁쟁합니다. 박해와 기아와 고독을 물리치면서 조금도 자기 소신을 의심치 않았던 선생의 생애는 그 깊이 파진 주름살 속에서 뚜렷이 찾아볼 수 있었으며, 유난히도 빛나던 안광 속에 담겨진 선생의 용기와 결단력은 아직도 우리의 뇌리에 뚜렷합니다. 더우기 파안대소하던 선생의 모습 속에 넘쳐흐르던 인간애와 솔직성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 희생을 무릅쓰고 언제나 당명에 좇는 모범을 몸소 실천하였으며 분당보다는 합당을 위해 애쓰고 극한투쟁의 선두를 달리면서도 협상의 시리와 이성을 잃은바 없었읍니다.『부귀에 집착하는 자와 더불어 국사를 논할 수 없다』고 장관직을 자퇴하기도 하고 양복장 하나 없이 생애를 마치기도 하였읍니다.「메기」의 노래는 가정에 대한 못다 한 사랑을 읊은 것이오,「봉선화」는 민족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토로한 것이었읍니다.
곰탕 집과 대중주점에 출입하면서 자기위장의 권위주의를 배격하던 선생. 자신의 굳은 지조를 내세운 바 없었으며 어제의 변절자와 적에 관용하는데 앞장서 왔읍니다.
나는 가회동 입구를 지나칠 때마다 일제하의 박해와 기아를 이겨내면서 혁명가로서의 지조를 지키시던 선생의 거룩한 모습을 되새겨보게 됩니다.
압력을 받은 집주인이 밀린 집세를 구실로 셋방살이의 가재를 노상에 내던지는 바람에 오고 잘 곳이 없어서 한 길가에 가재도구를 쌓아놓고 은 가족이 별을 쳐다보면서 하룻밤을 지새웠다던 그 모습을 되새겨 보게 되는 것입니다. 출입할 옷조차 없어서 관훈동 여관 문간방에 쭈그리고 앉으셔서 여관집 식모살이를 하던 사모님의 밥상을 받으시던 유석 선생!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일제의 회유책을 끝까지 물리치고 옥고를 거듭하시던 유석 선생-. 오늘의 우리사회와 견주어 생각할 때 참으로 가슴아프기 짝이 없읍니다.
크고 작은 별들이 한반도의 독립·민주 사를 밝혀 왔으되 유석 선생 같이 크고 밝은 별은 드물었다고 생각됩니다. 사상과 행동이 일치하며 그 깊이와 폭과 농도가 그토록 탁월하였던 인물은 찾아보기 힘든 것입니다. 선이 뚜렷하고 직선적이면서도 모든 선을 다 합쳐놓은 선 아닌 선! 온 겨레의 선! 철저한 자유·민주주의자 이면서도 민족주의자인 유석-.
혁명가이면서「스테이츠맨」이 이던 거인은 70년대의 풍운을 앞둔 우리들에게 절실한 계훈을 남겼습니다.
『개인보다는 당, 당보다는 국가를 사랑하라』『민족은 영원한 존재요 국가는 왕래하는 존재다』라고-.
선생이 떠난 지 어언 10년이 되어도 아직 선생의 유업을 완수치 못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오늘도 선생님을 추모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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