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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서 격찬 받은「솔·벨로」의 신작 소설「새믈러씨의 유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현대 미국문단에서 특이한 작가로 평가되고 있는 「솔·벨로」가 새 소설 『「새믈러」씨의 유성』(Mr·Sammler's Planet·「바이킹」사 간·3백13면·6「달러」95「센트」)을 발표하자 「뉴요크·타임즈」를 비롯한 각 신문과 주간지서 격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학살서 살아남은 유대인 그려>
이 소설의 주인공 「새믈러」는 날 때부터 박해를 받아야 했던 「폴란드」계 유대인이었다. 그는 총탄 파편으로 외눈이 되었고, 「나치」의 대량학살 때 살아남은 행운을 얻었으며, 반「나치」에 대한「게릴라」활동도 했다.
그는 젊어서 상류사회에 드나드는 행복한 시절도 겪었고 또 「런던」의 신문인으로 「블룸스버리」문학「클럽」의 일원이기도 했다.
이제 그는 늙어서 「그루너」라는 부유한 「뉴요크」의 부인과 의사인 중년의 조카에게 의지해 살게된 것이다.
큰 키에 깡마른 편인 그는 항상 큰 모자를 쓰고 다녔다. 그는 공중전화통이 소변통으로 사용되는 「맨해턴」에 살면서 이 도시가 부패와 타락의 면에서 「나폴리」나 「살로니카」를 능가하고 있다고 단정한다. 그러나 그 사실은 그를 실망시키지도 기쁘게 하지도 않는다.
독자들은 처음엔 「새믈러」가 감각적이고 세련되고 슬픈 유대 지식인으로서 괴로움을 겪는다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차츰 「새믈러」는 매가 참새에 접근하듯이 문학적 형상에 의미를 주고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사실상 「새믈러」는 일종의 현자다. 그는 이미 지식인도 작가도 아닌 생활을 하고 있지만 자기가 설 땅을 찾고 그것을 정화하려는 정신을 갖고 있다.
「새믈러」는 『「뉴요크」가 사람들로 하여금 문화의 붕괴,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고 말한다. 「벨로」에게는 이 작품이 전작 『그날을 잡아라』의 무대, 『희생자』의 과대망상, 『허조그』의 세사에 대한 「아카데미」한 설교로의 복귀를 뜻한다. 그러나 그의 어조는 훨씬 신랄하다. 그만큼 「유럽」문화와 지적자유의 보루라는 「뉴요크」에서 「벨로」가 발견하는 야만은 심각한 것이다. 「벨로」는 『이 소설의 얘기들이 「뉴요크」의 중류층 생활에 있어서의 비정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주인공 「새믈러」의 실제적 목표는 서민적인 마음을 갖고 사는 것이며, 그의 주된 생활과업은 올바르게, 어리석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금년55세에 접어든 「벨로」가 지금까지의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꾸준히 물어온 것은 『선인이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살아 갈 수 있는가』하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새믈러」씨의 유성』은 철학적인 소설은 아니다. 「새믈러」의 생활은 「로맨티시즘」과 단념과 지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떤 힘(폭력)에 대한 외경 등의 혼합과 같은 것이다.
구조적으로 가장 위태로운 소설이지만 그 성격이 신비롭게도 균형을 유지한다. 「휴매니티」와 문체도 극히 훌륭한 것이며, 문학적으로 극치에 이른 감이 있는 작품이다. 작가 「벨로」가 앞으로 이 작품을 뛰어넘는 새 작품을 쓰기는 아마도 어려울 것 같다는 게 미국문단의 중론이다.
『희생자』, 『「오가마치」의 모험』, 『미의 왕「헨더슨」』 등으로 미국예술원상, 미국저작상, 소설상을 받았으며 64년 『허조그』로 「베스트셀러」작가의 지위를 확보한 「벨로」는 현재「시카고」대학근처에 있는 한「아파트」에서 스스로의 「독립」을 만끽하며 틈틈이 대학에 나가 「멤빌」「조이스」「보들레르」 등 작가들을 강의하고 때로는 동료들과 자기 소설에 대해 토론도 하며, 사색에 잠기기도 한다.
삶의 「아이러니」와 인생의 곤경을 스스로 자신의 예리한 사고와 「비전」으로 분석진단 하지만 또 스스로를 우롱하고 욕설하는 자의식 과잉의 지식인을 그려온 「벨로」의 이 신작은 또 어떤 선풍을 몰고 올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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