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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미술의 오늘 … 경쟁이 있어 더 뜨겁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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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신미경의 비누 조각 ‘번역’ 연작들(2006~2013) 올해의 작가상=▶1995년 시작 ▶2012년 경쟁전 도입 ▶4인의 후보에 4000만원 후원금 ▶우승상금 없고 TV 다큐 제작

오늘의 현대미술은 무엇을 탐구하는가. 지금 여기 한국의 문제적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두 개의 수상 작가전이 각각 개막했다. 경기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하는 올해의 작가상 2013’과 서울 신사동 아틀리에 에르메스가 주최하는 ‘2013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이다.

 두 상은 10년 이상 꾸준히 지속되며 오늘의 한국 현대미술을 보여주는 전시로 자리를 굳혔다. 전수천·황인기·이종구·정연두·박기원, 그리고 장영혜·김범·고(故) 박이소·서도호·박찬경 등이 각각 국립현대와 에르메스를 거쳐갔다.

 2000년 시작한 에르메스 미술상은 2004년부터 3인의 경쟁전 형식을 취해 우승자를 가려왔다. 공정한 심사를 거쳐 후보 작가를 선발하고 2000만원씩 제작비를 지원하기에 거의 매해 긴장감 도는 전시로 관객을 맞았다. 우승 상금은 2000만원이다. 지난 14년간 에르메스 미술상이 국내 최고 권위의 시상 제도와 전시 프로그램으로 자리잡는 사이 경쟁적으로 다양한 상이 출범했다. 올해의 작가상·두산연강예술상·다음작가상·송은미술대상 등이다.

 ◆파격적 형식 화제=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은 1995년 시작됐다. 관장 이하 미술관 학예사 전원이 매해 1∼3명씩 한국 미술계의 생존 작가 가운데 역사적 가치가 돋뵈는 이를 선별해 개인전을 기획하는 형태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의 생존 미술가가 열 수 있는 유일한 개인전이었다.

 이 전시가 지난해 개편되면서 에르메스 미술상의 지위도 흔들리고 있다. 올해의 작가상은 경쟁전 형태의 시상 프로그램을 도입, 외부 심사위원들로 4인의 후보를 뽑아 4000만원(1회 때는 3000만원) 상당의 ‘SBS 문화재단 후원금’을 제공한다. 우승 상금은 없지만 TV 다큐멘터리가 제작된다. 대중과의 소통을 고민한 모양새다.

 지난해의 첫 전시는 대성공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특유의 보수성에서 탈피해 도입한 파격적 경쟁전 프로그램은 문화계의 이목을 한데 모으기에 충분했고, 선정된 네 팀의 작가들, 즉 김홍석, 문경원·전준호(우승), 이수경, 임민욱도 열과 성을 다해 전시에 임한 모습이다. 그러나 첫 회의 성과가 부담이 된 듯 ‘올해의 작가상 2013’은 다소 긴장감이 떨어진 모습이다.

 공성훈(48)·신미경(46)·조해준(41)·함양아(45), 4인의 최종 후부 작가들은 등분의 공간에서 각기 문법에 맞춰 저마다 근작전 혹은 약식 회고전을 열었다. 을씨년스러운 자연 풍경을 생경한 느낌의 색조와 필치로 그려낸 공성훈의 회화전 ‘겨울 여행’은, 일상의 숭고를 화폭에 집적해내는 공력을 자랑한다. 비누로 역사적 조상이나 도자기를 재현해온 신미경의 전시 ‘번역-서사적 기록’에선, 한 가지 재료에 통달한 장인의 스프레짜투라(sprezzatura·어려운 것을 쉽게 해내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를 느낄 수 있다.

노순택의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2013) 에르메스 미술상= ▶2000년 시작 ▶2004년부터 3인 경쟁전으로 ▶경쟁전 참여 작가에 2000만원 지원금 ▶우승작에 상금 2000만원

 ◆설치·영상·사진의 만남=에르메스 미술상의 3인 후보의 전시도 차분한 양상이다.

 나현(43)의 ‘바벨탑’은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악마의 산’과 서울의 난지도의 역사를 추적하고 수집한 자료들을 엮어서 만든, 바벨탑 모양의 ‘보물 진열장 ’이다. 인용하는 구절이나 역사적 사실은 거창한데, 그것을 직조해 작가가 창출해내는 미적 에너지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 정은영(39)의 영상설치물 ‘정동의 막’은 여성 국극 배우를 희망하는 젊은 여성이 창극적 남성성을 구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렌즈를 통해 그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또한 의사-남성성을 모방하고 실현하는 것처럼 독해된다. 노순택(42)의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는 작가가 2년 반 동안 쓴 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사진 르포르타주 전시다. 포격 사건 이후의 연평도를 촬영한 사진과 정치인 안상수가 보온병을 포탄으로 오인했던 에피소드 등을 뒤섞어 자신이 경험한 바를 가감 없이 제시한다.

 ‘올해의 작가상 2013’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10월 20일까지 이어지며 관람료는 5000원이다. ‘2013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은 서울 신사동 아틀리에에르메스에서 9월 29일까지 열린다. 관람료는 없다. 양쪽 모두 우승자는 9월에 발표한다.

임근준 (미술·디자인 평론가)

▶올해의 작가상 2013

★★★☆(임근준) 작가들로부터 더 밀도 높은 실험작을 뽑아내려면 무엇을 어떻게 보완해야 좋을까.
★★★★(권근영 기자) 회화의 복권, 역사와 번역, 아버지와 근대사, 미디어의 미래 등 4인4색.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이 모든 게 다 있다.

▶2013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임근준) 경쟁전 형식으로는 10년이 됐으니 이제 새로운 혁신을 위해 변화를 모색할 때다.
★★★★(권근영 기자) 지난 10년 미술계를 변화시킨 이 상이 미술계 밖으로 나와 대중과의 접점도 찾아주길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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